▲ 최동열

영동본부 취재국장

예전에 ‘해양수산부’에서 ‘거꾸로 본 세계지도’를 만든 일이 있다. 그 지도는 남반구를 위에 두고 있어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리고 있는 세계지도를 뒤집어 놓은 것이었다. 그 지도에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바다, 태평양으로 향하는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넓은 대륙(유라시아)에서 가장 큰 바다로 통하는 중심 길목에 대한민국이 버티고 있다는 것을 지도는 절묘하게 웅변했다.

왜 그런 지도를 만들었을까? 해양수산, 즉 바다의 중요성을 새롭게 일깨우기 위한 시도였다. 바꿔 말하면, 일반적 인식의 틀을 뒤집어 설명해야 할 만큼 바다에 대한 인식과 가치부여가 부족한데 대한 안타까움에서 탄생한 지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도의 생명력은 길지 못했다. 바다는 어업권이 있는 연안의 특정 수산구역을 제외하고는 물이나 공기처럼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공유자산이기에 주인 의식도 그만큼 부족했기 때문일까. 지도는 주목을 끄는가 싶더니 금방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졌다.

반도 국가인데다 분단 상황까지 더해진 우리나라는 사실 ‘섬나라’나 다름없다. 생존의 길이 바다를 통해 열려있고, 그 바다를 경영하지 않으면 살길이 막막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바다를 그만한 위치에 두고 대접하지 못했다. 대륙으로 뻗어 나가겠다는 역사 궤적이 그러했던 때문인지, 바다는 몇몇 위인들의 활약상 외에는 육지에 비해 늘 가볍게 다뤄졌고, 소득은 별로 없이 위험한 곳으로만 인식돼 왔다.

돌이켜보면 근대 수산행정의 탄생 때부터 우리 바다는 생활과 경제의 무대로서 가치가 평가절하 됐다. 근대 수산행정의 첫 전담부서는 1894년 갑오경장에 의해 직제된 8아문(衙門) 가운데 농상아문에 설치된 수산국이었다. 그러나 이 수산국은 이듬해 농상아문과 공무아문이 통합돼 농상공부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폐지되는 바람에 1년도 못 채우고 단명하고 만다. 개편된 농상공부에서 수산업은 농무국 산업과에서 염(鹽·소금)업, 양잠업, 삼(蔘)업 등과 함께 취급됐으니 근대화 초기 국민들의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수산업에 대한 대접이 그저 안타깝고, 씁쓸하기만 하다.

그런 인식은 비단 중앙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318㎞에 달하는 장대한 해안선을 보유하고 있고, 전국에서 가장 넓은 바다를 앞마당처럼 두고 있는 강원도에서도 어촌과 어항은 삶의 질에서 여전히 가장 고민이 많고, 개선과 발전 과제도 산적해 있는 곳으로 꼽힌다. 그만큼 상대적 낙후와 소외가 심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해양수산부가 부활되는 것은 반갑고, 적절한 선택이다. 동해안 어업인들은 “정부 부처가 나뉘어 ‘곁불’을 쬐던 해양·수산 분야가 다시 업무를 총괄하는 정부 조직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 우선 고무적”이라고 환영과 기대를 표명하고 있다.

강원도로서도 환동해권 항로 활성화,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 지정에 따른 항만 시설 확충과 연계, 중국 어선의 북한 동해수역 ‘싹쓸이’ 조업에 따른 피해 대책, 수산자원 확충과 어업인 소득 증대 등의 과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정부 파트너에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때마침 강원도에서도 지난해 7월 ‘출장소’라는 왜소한 어감으로 불렸던 바다 관련 행정조직을 ‘환동해본부’로 개편,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바다와 어촌은 과거에 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기에 역설적으로 미개발 광맥처럼 미래 가치가 더 빛나는 곳이기도 하다. 각종 수산물을 위판하는 어항 가운데는 연중 관광객을 불러들이면서 관광·문화와 경제의 요체로 탈바꿈 하는 곳이 전국 각지에 속속 생겨나고 있고, 명품 체험어촌들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서로 자기 지역 항구에 더 많은 물류와 여객을 유치하고, 항로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포트 세일즈’ 경쟁도 치열하다.

부활하는 해양수산부 청사를 놓고도 서·남해안의 내로라하는 도시들 간에 유치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강원도로서는 항만과 수산 규모의 격차가 크다보니 유치 경쟁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처지다. 그저 어디로 결정되든 이동 거리가 더 멀어지는데 대한 걱정속에서 추이를 지켜볼 뿐이다. 그 물리적 거리가 동해안과 서·남해안의 격차를 더 심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심정으로 ‘거꾸로 본 세계지도’를 다시 펼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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