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궁창성

서울본부 국장

딱 5년 전의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8년 3월14일 춘천 서면 애니메이션박물관을 방문해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를 받았다. 춘천 방문에는 서면 박사마을 출신인 한승수 국무총리와 한림대 총장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발탁됐던 김중수 현 한국은행 총재도 동행했다. 이 대통령은 김진선 도지사, 박흥수 강원정보문화진흥원장과 애니메이션 박물관을 둘러보며 애니메이션 발전방안을 놓고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방명록에는 ‘춘천이 대한민국 文化의 中心이 되기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이어진 업무보고에서 “문화예술의 도시이자 애니메이션을 주관하는 춘천에 와서 감회가 더 있다”고 밝힌뒤 “내각을 책임지는 한 총리가 강원도 출신인거 아시죠. (이상희) 국방부 장관도 강원도 출신이고, 통일을 책임질 (김하중) 통일부 장관도 강원도 출신이에요. 이번 내각은 강원도 내각이라고 할까. 그렇습니다”라고 말했다.

굳이 기자가 5년 전 기록을 찾아 이틀 뒤면 퇴임하는 이 대통령의 취임초 한 장면을 거론하는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 때문이다. 인사는 인사권자의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해당 분야에 능력있고, 도덕성을 갖췄으며, 조직 상하의 신뢰를 받는 인사를 적재적소에 임명하는 것이 기본이다. 국정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은 여기에 지역균형과 지역안배를 고려해야 한다. 강원도는 작고 약하다. 인구도, 경제도, 정치력도 대한민국의 3% 규모다. 5000만 인구에 강원인구는 약 150만명이고, 지역 총생산도 3% 안팎이다. 국회의원도 300명 가운데 9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역대 정권은 출범직후 조각을 하면서 균형과 안배를 고려해 지역인사를 중용했다. 군부정권 종식후 지난 20년 동안 역대 4개 정부는 1기 내각에서 지역을 고루 챙겼다. 김영삼 정부의 1기 황인성 내각에서는 춘천출신의 이민섭 문화체육부 장관이, 노무현 정부의 1기 고건 내각에서는 강릉출신의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이 입각했다. 이명박 정부의 1기 한승수 내각에서는 한 총리와 원주출신의 이상희 국방·김하중 통일장관이 포진하면서 다른 시·도의 부러움을 샀다. 김대중 정부의 1기 김종필 내각은 이례적으로 ‘무장관’이라는 상처를 도민들에게 남겼다.

박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행정부에서 일할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자 18명과 청와대에서 자신을 보좌할 참모진 12명에 대한 인선을 마쳤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이후 15년 만에 강원도 출신 ‘무장관’에 이어 강원도 출신 ‘무수석’이라는 인선을 하면서 도민들에게 ‘충격’을 던져줬다. 기자가 ‘충격’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신뢰와 약속의 정치인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돼 있는 박 당선인이 균형과 안배 등을 감안한 대(大)탕평인사를 여러차례 약속했기 때문이다. 또 강원도민들은 지난해 4월 총선과 같은해 12월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박 당선인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는 점에서 인선 결과는 가혹했다.

정권 출범을 앞두고 주요 공직 인선에 대해 ‘육법당’ 인사니 ‘성시경’ 인사니 하는 비판은 박 당선인에게 상처고, 정권에 적지 않은 부담이다. 박근혜 정부는 사흘뒤인 오는 25일 출범한다. 그리고 임기 5년 동안 많은 정부 인사를 남겨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균형과 안배라는 박 당선인의 정치철학이 반영되고 참모들도 다음 인사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으로 믿는다. 강원도민들은 지난 양대 선거에서 집권당과 박 당선인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해 성원을 보낼지 여부는 결국 집권 세력의 선택에 달려 있다. 강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 정권도 투표함을 통해 얻기도 하지만 잃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공직 인선을 지켜 보면서 떠오른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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