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光埴 本社 논설위원

 중국 호남성(湖南省) 일대가 지금 비상 사태다. 20 일 동안 계속된 폭우로 그 곳에 있는, 중국에서 둘째로 큰 동정호(洞庭湖)가 범람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 역사 깊고 아름다운 동정호가 어쩌다가 저 꼴이 됐는가? 억만 영겁 세월 속에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한갓 자연 현상일 따름인가, 아니면 자연 위에서 벌이는 영악한 인간들의 절제 없는 분탕질 때문인가?
 역사 속에서 시인 맹호연(孟浩然)은 이렇게 동정호를 사랑하며 지나갔거늘 오늘 이 시간 동정호는 어찌 저렇게 비참해졌는가? "팔월 호수는 잔잔한데 / 허공을 머금어 하늘인지 땅인지 / 운몽(雲夢)의 연못에 안개 자욱하고 / 파도는 출렁거려 악양성(岳陽城)을 깨뜨릴 듯 / 건너려 해도 배도 없고 삿대도 없고 / 한가로운 삶은 성군께 부끄럽구나 / 조용히 앉아 낚시꾼을 바라보니 / 부질없이 어부의 마음이 부럽구나."
 맹호연이 당시 잘 나가던 장구령(張九齡) 승상에게 벼슬을 구하려고 이 시를 썼다 하여 어느 곳에서는 '망 동정호 증 장승상(望洞庭湖贈張丞相)'이란 제목을 붙이기도 했지만, 그런 함의가 있다 할지라도 그건 행간의 숨은 뜻이고 여기선 그냥 '동정호에서(臨洞庭)'란 제목 그대로 호수의 아름다움을 느낄 따름이다. 다만 한 가지만 덧붙이면 수해와 관련해 동정호가 장강 즉 양쯔강에 원강과 상강이 합류하는 곳인 호북성에 접경한 호남성에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는 것.
 이런 동정호의 동쪽에 악양루(岳陽樓)란 이름의 한 누각이 있어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았는데, 성당(盛唐) 시절에 우울한 그러나 우국적인 시인 두보(杜甫)도 거기 가서 '악양루에 올라(登岳陽樓)'란 오언시 한 수를 짓는다. "예로부터 들어오던 동정호 / 오늘에야 악양루에 올랐다 / 오나라 초나라를 동남으로 갈라 놓고 / 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 사랑하는 벗들은 소식 하나 없고 / 외로운 돛배 위에 늙고 병든 몸 / 관산 북쪽은 아직도 전쟁인데 / 홀로 난간에 기대어 눈물을 짓노라."
 그리고 두보 사후 300여 년 뒤 황정견(黃庭堅)이 다시 악양루에 올랐다. "호수 가득한 비바람 / 악양루 난간에 홀로 기대니 / 물 위에 서린 동정산이 / 수신의 열두 갈래 쪽찐 머리인 듯 / 애석해라 / 동정호의 수면으로 내려갈 수 없구나 / 은빛 물결 속에 / 푸른 산이 보이는데." 그러고 보니 아하, '빗속에 악양루에 올라 망군산을 보다(雨中登岳陽樓望君山)'란 이 시에서 오늘의 범람이 조금 예감되기도 한다.
 다시 흘러 600여 년 뒤, 소식(蘇軾)을 배운 한림원 편수관 사신행(査愼行)이 칠언배율로 동정호를 읊는데, 때는 가을이다. '중추절 동정호의 달을 보고(中秋夜洞庭湖對月)'란 제목의 시는 앞에서 동정호의 아름다움을 갖가지로 수사하다가 끝에 가서 "인간은 이 경지를 알기 어렵거니 / 생각 없이 건너다가 우연히 보았다네 / 멀리 어부의 노랫소리를 듣고서야 / 오늘밤이 중추절임을 비로소 깨달았네" 하고 짐짓 너스레를 떤다.
 지금 동정호는 범람 위기에 천만 명이 몸을 떨고 있다. 지난 98년에 한번 제방이 무너졌고, 올해 또 다시 무너지면 아비규환의 참상이 벌어질 것이다. 자연이 심상찮다. 우리 영남 지방에서도 그랬고. 아무래도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보복이 시작된 것 같다. 이미 중국엔 올 여름비로 900여 명이 저 세상 사람이 됐다는데….
 사신행이 보았던 그 가을의 휘영청 보름달을 오늘 우리들은 어떤 심정으로 볼 터인가? "달님이여, 부디 용서해 주오." 이럴 텐가? 참고 사항. 이 이야기는 금강산댐, 평화의 댐, 화천댐, 춘천댐, 소양댐 그리고 합수머리 의암댐 가까이서 사는 한 되잖은 위인의 부질없는 넋두리 혹은 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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