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마을 문화만들기에 참여하면서 갖는 의문
외지인에 좌우… 이벤트성 우려
주민 삶·문화 녹여야 더 뜻깊어

▲ 마을 어르신들의 이름을 써 넣은 화천 동지화 마을 밤나무 그림.

주말에 화천읍 신읍리에 다녀왔다. 신읍리 동지화 마을은 지난해부터 안전행정부의 지원으로 평화생태마을로 조성중인 곳이다. ‘극단 뛰다’가 상주해 있고, 예술가 부부인 이정인 이재은 부부, 조각가 최승림 씨 등이 어울려 사는 등 작은 마을에 예술가가 제법 많다. 이런 예술자원들이 힘이 되어 생태 아트빌리지로 가꾸는 예산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그 덕에 폐교를 활용하고 있는 ‘뛰다’의 공간과 이정은 이재은 씨의 ‘숲속예술학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마을을 돌아보고 따스한 봄볕에 정인, 재인 씨에게 차를 얻어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업에 대한 궁굼증을 풀고 이 마을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함께했다. 정부지원 아래 마을을 만든다면 필경 관광자원으로 쓴다는 개념이어서 그것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것저것을 물어보니 부부는 세세한 행정의 목표는 잘 모르는 듯했지만 공간이 새로워지면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는 기대 속에서도 조금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그들이 거주하는 숙소 바로 앞에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있었는데, 그곳을 불특정 다수에게 마구 내놓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비치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게스트하우스를 여는 순간 닥칠 일들은 뻔한 것 아닌가. 손님 치다꺼리에 치여 작업에 전념할 환경이 되지 못할 것이 아닌가? 또 마을도 외지인이 들이 닥치면 펜션을 짓는다든지 체험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로 의견이 분분해질 것이다. 이미 그런 내홍을 겪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양한 문화가 매개가 되어 농촌마을이 주민들의 문화경험도 넓히고 새로운 문화적인 환경으로 바뀌어 가는 일은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본말이 전도되어 마치 문화나 예술이 마을을 크게 뒤바꾸어놓을 것 같은 환상을 갖게 된다. 그 마을에 녹아든 문화가 아니면 한때의 이벤트로 끝날 위험성도 크다. 숱한 농촌마을을 대상으로 한 문화사업들이 그래왔다. 특히 외부 예술가나 기획자들이 의도해 추진된 사업일수록 홍보만 요란하다.

이 마을에서 정인 씨가 안내한 곳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마을 창고였다. 마을 어르신들이 이곳의 특색인 밤나무를 그리고 거기에 자신들의 이름을 써놓은 창고 벽화는 화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삐뚤빼뚤 생전 처음 붓을 잡아보았을 어른들의 손길이 담겨있었다. 억지로 작품을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흔적이 담긴 벽화가 마을에 있는 다른 조형물보다도 더 오래 눈이 갔다.

이달부터 춘천의 안보리 마을 주민들과 문화를 매개로 어울리는 일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 같은 기존의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해왔다. 그것을 신읍리에서 다시 확인하고 다짐을 한다. ‘성과에 얽매이지 말자. 주민들의 힘을 따라가자.’

어떻게 하든 지원의 결과를 정량적으로 평가하려는 제도가 싫어서 한동안 하지않았던 이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갖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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