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순 뮤지컬… 초기 난관 극복
지역문화 지원금 관심도 높여야

▲ 지난해 춘천의 극단 ‘ART-3’가 만든 뮤지컬 ‘윤희순’

한사람의 삶이 시대와 뒤섞이며 역사가 된다. 대부분의 삶은 기록되지 않고 흩어지지만 치열하게 시대에 부대끼며 살던 사람들의 삶은 시간을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그 흔적들을 더듬어 보게 한다.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각종 사업들이 생기는 이유일 것이다.

며칠 전, 류연익 광복회 강원도지부장이 별세했다. 그분과 깊은 인연은 없지만 지난해 춘천의 극단ART-3가 뮤지컬 ‘윤희순’을 만들며 자문위원을 맡아 함께 회의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몇 차례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지난해 뮤지컬 ‘윤희순’을 함께 관람했을 때의 그분 표정이 떠올랐다. 눈물을 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가슴 가득 눈물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분이 어떠세요? 감동하셨구나!” 옆에 다가가 장난기를 담아 물었지만 아무 말을 하지못하는 그 표정. 쌓여있던 한이 풀린 것 같기도 했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와 북받치는 모습인 것 같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그분 역시 중국에서 유년기에 독립운동을 했다고 한다. 삶 자체가 거대한 드라마인 그분의 생애를 생생한 목소리로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지만 이제 그 기회가 없어졌다.

그분은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지 않는 것을 늘 답답해했다. 사실 나도 애국이니, 국가니 하는 단어를 친근하게 느끼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류연익 선생의 할머니 되시는 윤희순의사의 뮤지컬을 만든다고 할 때 적이 걱정을 했다. 우리가 늘 강요받아온 애국심을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가, 연출자에게 여러차례 물었고, 모범답안 같은 스토리가 아니기를, 또 국가로 인해 빼앗긴 평범한 개인의 삶과 고민도 표현되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극단ART-3는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 항일운동가 윤희순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극화하는데 뮤지컬 방식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뮤지컬은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강원문화재단지원금 6000만 원이 종잣돈이었지만 실 제작비는 1억20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군자금’ 이란 이름으로 후원금을 모금했고 티켓을 파는데도 심혈을 기울였지만 공연이 끝난 뒤 극단은 빚을 떠안았다.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증나게 하는 지원금, 완성도를 갸웃거리게 하는 한정된 지역 예술자원, 또 어렵게 제작해도 돈을 주고 표를 사는데 인색한 관객…. 공연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지역의 문화현실을 보면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뮤지컬 ‘윤희순’의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 애국이나, 민족을 강제하지 않았다.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사람들에게 서서히 스며들게 했다. 이런 류의 작품들이 갖는 한계를 뛰어 넘은 것 같았다.

뮤지컬에서 윤희순은 손자에게 내 땅에서 당당하게 살게 해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손자는 해방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왔고, 한평생 자신들의 역사가 잊히지 않기를 소망했다. 이제 그분 또한 과거가 되었다.

부음으로 생각난 뮤지컬 ‘윤희순’. 그래서 지난해 7월 공연 이후의 사정을 극단에 물었다. 공연은 아직 무대에 오를 기약이 없었다. ‘많은 학생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시군 순회를 하면 어떨까?’ 공연을 보고 많은 사람이 말했지만 큰 울림이 되었던 우리 역사 이야기는 막 뒤에 멈춰 있었다.

뮤지컬의 마지막 노래를 떠올린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을 수 있겠소. 꺾이지 않는 의지, 굴하지 않는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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