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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굶주림과 남한의 복지정책

곽영승 2013년 04월 19일 금요일
   
▲ 곽영승

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행정학 박사

북한의 소행에 넌덜머리가 난다. 물론 이런 패악은 인민의 고혈을 빠는 파렴치한 김씨 일가와 그에 기생하는 정치집단의 술책이니 굶주리는 북한 동족들까지 미워할 것은 아니다.

해방 직후 남한보다 잘 살았다는 북한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되었을까? 요즘 북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북한의 처참함은 양두구육(羊頭狗肉)의 공산주의자들이 정치권력, 국가자원을 독점한데서 비롯됐다.

전 세계 모든 공산국가의 공통된 결과다. 유산가들의 재산을 강탈해서 인민들에게 분배하기는커녕 자신들이 모두 챙기고 인민은 이들의 절대권력을 섬기는 도구로 전락했다.

역사상 인민을 잘 살게 한 공산국가는 없다. 왕조국가보다도 더 못살게 인민을 탄압했다.

남한의 1인당 GNP는 2만 3000달러, 북한은 500∼1800달러로 추정된다. 북한정부가 몇 해 전 화폐개혁을 단행한 것은 암시장 이용자들을 벌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자본주의의 맛을 들이면 체제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판단이라는 것.

김정일은 바·노래방·소형극장이 딸린 7층짜리 궁전에서 살았다고 한다. 파도설비를 갖춘 거대한 수영장이 있고 연간 꼬냑 예산만 80만 달러에 달했다.

1917년 소련의 볼셰비키혁명으로 모스크바강은 피로 넘쳤다. 인민의 평등은 고사하고 레닌과 측근들은 타도대상이었던 차르치하 때보다 더 악독한 독재권력을 휘둘렀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면 누구든 죽였다. 스탈린 때만 4000만명을 죽이고 숙청했다.

마오쩌둥은 농산품을 독점하고 권력기반이었던 농민들을 못살게 했다. 대약진운동으로 2000∼4000만명이 죽어나갔고, 1인당 국민소득은 4분의 1로 추락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으로 창궐한 홍위병은 엄청난 국민적 재앙이었다.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경제적 번영은 포용적 사회에서 나온다”고 했다. 독재집단은 절대로 시장의 기능을 대체할 수 없다.

당연히 이들의 뜻대로 동원되는 국가의 인·물적자원은 효율성과 생산성, 타당성과 합목적성 등 모든 면에서 왜곡되게 마련이다.

오늘날 북한과 남한의 엄청난 차이는 바로 여기서 연유한다고 애쓰모글루는 분석했다.

남한의 자본주의, 포용적 경제제도는 저축 투자 혁신을 보장했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했다.

양측 모두 중앙집권화를 통해 성장이 가능했지만 남한은 박정희 정권하에서 수출과 혁신을 장려하고 교육·교통·전기·통신·보건 등 공공재를 제공했지만, 북한은 탄압과 통제를 위해 권력을 휘둘렀을 뿐이다. 남한은 재능과 혁신, 창의성에 보답하는 경제를 수립한 덕분에 경제기적을 이루었지만 북한은 경제재앙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번영은 재능과 포부, 독창성, 교육기회의 균등 등이 보장돼야 가능하다. 내 재산이 없는 공산독재정권하에서 누가 열심히 하겠는가? 더구나 정보화시대의 혁신과 창조는 꿈일 뿐이다.

입신양명, 부의 축적 등 노력한 만큼 현실적 과실을 누릴 수 있는 사회라야 번영과 발전이 지속가능하다. 소득의 공평한 분배,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사회가 건강한 발전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사회불안과 범죄가 늘어나고 결국은 번영 발전 민주주의가 부실해진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되기도 하지만 독점의 폐해를 낳기도 한다. 따라서 공정한 거래를 위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이제 개천에서 용나기 어렵다고 한다. 계층이 교육으로 세습되고 빈곤이 대물림된다. 빈곤·서민층의 인력이나 아이디어는 각 부문의 정책결정에서 소외되고 있다.

자원이라고는 인력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커다란 인적자원의 낭비다. 빈곤·서민층 복지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보편적(부유층) 복지를 추구하는 것은 자원동원의 왜곡 아닐까?

번영과 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공정한 경쟁, 온전한 번영을 위해 빈곤·서민층의 경쟁력을 키워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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