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춘천여고 교정 임자없이 방치
“문화공간 탈바꿈” 목소리 작아

지난해인가, 춘천여고 목백합 나무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 나무 아래서 음악회를 열고 싶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학교가 이전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그 학교 졸업생으로서 추억이 있었고, 조금 더 넓게는 학교가 이 지역에서 갖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며 갖가지 방식으로 이 학교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고 싶었다.

‘목백합과 함께 질풍노도의 청춘을 보낸 동문들을 위해, 그리고 그 곳을 선망의 대상으로,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을 위해, 함께 즐기는 축제를 벌이고 싶다.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가 삶에서 특정한 훈장이 되거나, 지겨운 딱지가 되어 괴롭지 않고, 그저 그 시절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 반갑게 동문들을 만나는 사회를 꿈꾼다. 특정집단의 추억보다는 다 함께 어우러지며 화해를 나누는 그런 축제를 목백합 나무 아래서 열고 싶다.’

이 꿈은 그저 꿈으로 끝났고, 출퇴근 길에 바라보는 학교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며칠 전, 걸어서 출근하며 문이 열려 있길래 교정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몇 장의 사진을 찍어두었다. 다시는 찍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풍경들이므로.

1934년 개교한 이 학교는 줄곧 이 자리를 지켜왔고 교정 한가운데는 학교 역사와 함께 하는 목백합 나무 한그루가 있다. 교사(校舍)는 세월에 따라 옛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이 나무만은 세월을 덧쓰면서 견고하게 서있다.

이 자리에 무엇이 들어설지 확정되지 않은 것 같다. 부지를 매각하려고 하지만 아직은 적정한 임자가 없는 듯하다. 학생들은 새 건물로 옮겨갔고 살 주인을 기다리는 텅빈 학교는 곧 흉물이 될 것이다.

조금 늦었지만, 이 학교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조금 더 활발한 공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역의 역사이며 문화로서 그 가치를 생각하고 그 유산을 더 가치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곳이든 학교들은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심에 있다. 고단한 시절, 학교는 미래를 위한 꿈이었기에 지역주민이 함께 키워갔다. 이런 공간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존재의 뿌리도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춘천여고 바로 아래에 있는 옛 중앙감리교회는 원형을 살려서 미술관, 공연장, 창작실로 재탄생해 춘천의 문화명소가 되었다. 인근에 있는 이 학교도 이런 관점에서 향후 운명을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

학교의 흔적을 살리면서 주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으면 좋겠다는 논의들이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지만 힘이 실리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움을 담은 작은 목소리일 뿐이다.

요즘 동네마다 사라지고 있는 파출소 건물도 제각각 다른 용도로 쓰인다. 카페, 음식점 등으로 탈바꿈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본래의 기능을 살려서 지역의 관광 또는 문화정보센터, 마을 박물관 같은 공공성과 문화를 결합시킨 공간으로 만들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이런 생각을 말하면 가정 먼저 경제적 효율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경제적 가치와는 다른 측면에서 문화유산의 가치가 존중되었으면 좋겠다. 마을마다 골목마다 옛 모습을 간직한 작은 문화공간이 있는 도시, 그 도시에서는 사람들의 숨결과 도시의 생명을 느낄 수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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