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열

영동본부 취재국장

해발 1676m, 설악산 중청대피소에 ‘빨간 우체통’이 설치됐다고 한다. ‘산으로 간’ 우체통을 전국의 신문이 뉴스로 다뤘다. 그만큼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흔치 않은 뉴스 소재라고 판단한 때문이다.

문득, 일전에 한 문인이 “우체통을 보기 힘들다. 한번 기사로 다뤄보라”고 권하던 모습이 떠올라 거리에 나서 보니 정말 우체통 발견하기가 힘들다. 어제오늘 일이 아닐텐데, 마치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애장품을 잃어버린 것처럼 가슴 한구석에 휑한 공허감이 휩쓸고 지나간다.

그 거리에 서서 과거를 더듬는다. 내 손으로 편지를 써 우체통에 넣어 본 것이 도대체 언제였던가.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매일 글을 쓰는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내 지나온 행적이 그러할지니 거리에서 우체통이 사라진다고 해도 달리 할 말이 있을 턱이 없다.

필자가 사는 곳에서만 우체통이 그렇게 희미한 존재가 된 것일까. 그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애써 자위라도 하려는 심사에 자료를 뒤적여 봤더니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우체통이 2만1000여개 정도란다. 지난 1993년에 5만7000개였던 것이 절반 이상 사라졌다. 그래도 내가 사는 강릉은 100여개가 아직 버티고 있다고 하니 지방도시 치고는 상대적으로 꽤 많이 남아 있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우체통만큼 진한 추억이 배어있는 거리의 유산이 또 있을까 싶다.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한 연인을 기다리다 급류에 휩쓸려 죽은 ‘미생지신(尾生之信)’의 고사 주인공처럼 변함없이 그곳에 서서 무수한 애환을 담고, 날아온 ‘스토리 통’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리의 우체통을 통해 전달된 사연에 웃음 짓고, 눈물을 훔치던 사연 서너 가지쯤은 아날로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게 마련이다. 빨간 우체통은 우리가 요즘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소통’의 창구였던 것이다.

‘우리 땅’ 독도와 최남단 마라도에 이어 설악산 중청봉 산꼭대기에 우체통이 등장한 것도 그런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거리에 드물게 서 있는 우체통조차 나날이 쓸모를 잃어간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 2011년을 기준으로 우체통 1개당 하루 평균 이용 우편물은 9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편지 글’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기업체의 홍보물이나 청첩장, 모임 안내 엽서 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데도 우체통 이용 실적은 초라하기 짝이없다.

우체통이 그렇게 생활의 뒷전으로 밀려난 때문일까. 정보통신기기의 발달로 예전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홍수 같은 정보 및 의견 교환이 이뤄지고 있지만, 불신의 벽은 높아만 간다. 우체통이 떠난 거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안타깝게도 ‘폭력’이다. ‘을(乙)’의 자존심을 뭉개고, 벼랑 끝으로 모는 ‘갑(甲)’의 횡포, 친구의 죽음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되풀이되는 학교 폭력, 패륜적 가정 해체 등 우울하고, 비극적인 소식이 사흘이 멀다 하고 신문 지면을 장식한다.

물론 예전에도 ‘폭력’은 존재했지만, 오늘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전율할 만큼 매몰차고, 잔인하다. 소통의 끈인 ‘그리움’, ‘설렘’, ‘기다림’ 같은 감정이 우체통의 빈자리 만큼 희미해지고, 조급하면서 즉흥적이며 초조한 기계적 심사만 또아리를 틀었기 때문이라면 너무 비약일까.

우선 ‘문향, 예향’을 자부하는 강릉에서부터 산으로 떠난 우체통을 다시 거리에 세워보자. 관광·문화 명소와 해변에 빨간 우체통을 세우고, 우표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엽서나 편지글을 모아 시상이라도 한다면, 정감 넘치는 올림픽 도시의 소통 문화를 ‘올림픽 레거시(Legacy)’로 남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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