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 콘텐츠 수집 인색
민간단체 한계…정책·지원 필요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문화기획을 하고, 신문기자 경험을 가진 나는 자연스럽게 문화와 연관된 기록을 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다.

내가 관심을 갖는 기록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것은 넓게 보면 또 하나의 영역이기도 하다. 역사의 주류가 아닌 여성의 역사를 공부하고 기록하는 일, 또 하나는 사회문화사로서 지역사와 지역문화를 찾아내고 기록하는 것이다. 비주류 영역에 대한 관심이다.

지난해에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지원하는 구술자료 수집사업에 참여해 소양강댐 건설로 인한 수몰민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수몰지역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이 댐이 생기면서 어디로 이주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댐건설이 추동했던 지역이동과 그로 인한 생활변동을 들여다보는 작업이었다.

80세가 넘은 당시 북산면 이장은 일제 식민지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가로부터 억눌렸던 삶을 이야기하면서 가끔씩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또 요즘 수몰된 고향 내평리 인근 산자락에서 농사를 지으며 노년을 살아가는 권혁복 씨는 고향을 떠나오기 전 찍어놓은 마을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었다. 그 분은 ‘뻥튀기 장사가 강냉이를 “펑!”하고 튀기면 강냉이가 사방으로 튀어나가듯, 친구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고 실감나는 예를 들며 국가가 강제했던 흩뿌려진 마을 공동체와 그로인해 굴곡진 삶을 이야기 해주었다. 지역사이자 국가 역사의 한부분이며 60,70년대 생활문화사가 그들의 삶에 촘촘히 박혀있었다.

며칠 전에는 국가기록원에서 지역문화 기록을 찾는다며 예총, 문화원 등의 문화단체 사료를 수집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다른 영역은 몰라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관련 기록이라고 하니 내일이다 싶어 찾아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그 일을 하려니 어디서 사료를 찾아야 할지 난감하다. 광역 문화재단도 있고 기초문화재단도 있지만 그런 사료가 될만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여 지역의 역사로 남기고 콘텐츠로 활용하는 일에는 여간 인색한 것이 아니다. 열악한 각 단체들은 더 더욱 자기 기록을 갖는 일에 무심하다.

문화커뮤니티 금토에서 예술가들의 구술을 정리한 적이 있고, 강원민족미술인협회가 미술인들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을 한적이 있지만 민간단위에서 지속적으로 그 일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사업을 하는데 필요한 노하우와 재원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는 공공지원금들이 있지만 이 분야에 대한 이해는 무척 약하다. 지원의 대부분이 예술가들의 발표를 지원하는 단기성 지원에만 머물러 있다.

지난해에는 낯선 이가 강원도 극장역사를 정리한다며 정보를 얻으러 찾아왔다. 지역문화사를 쓰면서 연관된 작업을 했던 나에게 그 기록을 들고 와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 반가웠지만 한편으로 타 지역 연구자가 강원지역과 관련한 일을 하는 것에 부끄러움도 들었다. 그 연구자가 자료를 정리해 발표를 하는 자리에 가서는 지역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음을 지적하며 괜한 심술인가 싶기도 했다.

지역역사는 학문적 연구에서도 소외된 영역이다. 더구나 지역문화란 더욱 누군가가 주목하지 않는 비주류 영역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밑으로부터 문화, 삶이 배어있는 문화로서 지역문화의 가치를 키워가려면 어떻게 그 맥락이 이어져 왔는지를 기록하고 분석해야 한다.

문화정책에서 이 분야는 관심 밖이다. 요즘 몇몇 예술단체들이 자신의 기록을 찾고 정리하는데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조금 더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국가기록원의 기대를 채울 수 있을까? 만족할 만한 사료를 찾을 수 있을까? 내게 주어진 숙제가 무겁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