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규 한림대 경영대학장

한국분권아카데미 원장

요즘에는 갑을관계가 화제다. ‘라면상무’로 시작해서 ‘빵회장’, ‘대리점 밀어내기’를 거쳐 희대의 국가적인 성희롱 사건인 ‘윤창중 사건’을 정점으로 갑을사회의 진면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기야 갑을관계의 문제는 오늘 어제의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성숙하여지고 민주화 되어서 더 이상 시대착오적인 갑을관계의 문제가 계속 되어서는 아니 되며 이제는 사라져야만 되는 근본적인 변화의 시점에 우리가 와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갑을 관계는 계약서에 명칭이 반복되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 시작된 편리한 인식방법(이하 갑 이라하고)으로 시작되었지만 항상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힘과 권력을 가진 자이고 을은 약자와 억압받는 자의 대명사로 자리매김이 된 것이다. 집주인/세입자, 대기업/중소기업, 남/여, 국가/국민, 자본가/노동자, 선생/학생, 정부기관/민간기관 등등 모든 관계와 계약은 엄밀히 따져 보면 힘의 불균형과 돈의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에 수평적 거래관계인 갑을관계가 수직적 신분관계인 종속관계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권력과 자본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갑을의 필연성이 존재하기에 갑을적인 계약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계약사회요 관계사회이기 때문에 갑을은 늘 존재한다.

문제는 갑의 독점적 힘을 바탕으로 하는 횡포이고, 소수의 갑과 다수의 을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 관계다. ‘갑갑하면 갑’이 되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사람들은 갑의 위치에 서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갑을관계는 우리나라와 같이 유교적 권위주의의 동양문화에서 계약적 평등관계인 서양문화보다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또한 우리나라와 같이 남성위주의 사회구조에서는 성차별/성폭력 같은 문제와 결합하여 부작용이 증폭되어 진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민주화도 한마디로 갑을관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권력과 자본을 자유화하여 누구든지 소유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갑을관계의 비극이 존재한다. 엄밀히 말하면 갑을 뿐만 아니라 병정도 존재하는 것이다. 갑은 을의 갑이지만 을은 병의 갑이다. 오늘의 갑은 내일의 을이 될 수도 있고, 우리는 이 상황에서는 갑이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을이기도 하다. 갑을의 상호 동정심(compassion)이 필요한 대목이다. 역지사지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갑을사회는 일종의 후진사회다. 따라서 후진적 갑을의 문화를 바꾸어야만 한다. 최소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나도 을이다’라는 공감과 동정심으로 우리는 선진사회가 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공유라는 고등가치를 갖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갑을이 치유되는 것이다. 갑을의 치료제는 공감과 공유다. 공유란 나눔, 상생, 배려, 민주화, 공생, 지속가능성의 가치다. 요즘 공유경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 3의 길’ 이지만 옳은 길이다. 비극적 악순환의 경제가 공유적 선순환의 공유경제로 바뀌어야 한다. 한 때는 ‘공유지의 비극’으로 알려졌지만 이제는 다 같이 행복해지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공유경제가 자리매김하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하버드 대학의 포터 교수도 ‘CSR: 기업의 사회적 책임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서 이제는 ‘CSV:공유가치창조 Creating Shared Value’로의 전환을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사회가 받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갑을사회를 벗어나야 한다. 벗어날 뿐만 아니라 공유사회로 진입하여야 한다. 공유사회로의 전환은 정말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사고뿐만 아니라 행동양식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공유인이다. 더 이상 ‘갑을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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