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호

농협 중앙교육원 교수

한국인의 애창곡 중에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로 시작되는 ‘찔레꽃’ 이라는 노래가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42년에 발표된 곡이니 사람 나이로 칠순이 넘은 셈이다. 하루가 다르게 신곡이 쏟아지고,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처럼 정상을 차지하는 곡이 수시로 바뀌는 요즘, 이토록 오랜 세월 변함없이 사랑받고 불리는 이유는 이 노래에 한국인의 애환과 공감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 노래에는 가사의 내용과 사실관계가 다른 구절이 있다. 바로 노래의 첫 소절인 ‘찔레꽃 붉게 피는’ 이라는 부분이다. 찔레나무는 장미목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 관목으로 5월에 흰색 또는 연한 분홍색의 꽃을 피우는데 이 꽃이 바로 ‘찔레꽃’이다. 따라서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은 이 땅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그런데 왜 이 노래에서는 찔레꽃을 붉게 핀다고 한 것일까? 이 곡을 작사한 김영일 선생님이나, 노래를 부른 백난아 선생님 모두 작고하신 상황이라 직접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이에 관한 여러 가지 설(說)이 전해지고 있는데, 남쪽나라 바닷가에 피는 붉은 해당화를 찔레꽃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설, 찔레나무의 열매가 붉은 색으로 익기 때문에 찔레꽃도 붉은 색일 거라고 표현했을 것이라는 설, 만주 독립군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절절한 심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튼 찔레꽃은 주변 야산에 널리 자생하고 있어 매우 친근한 꽃이다. 어린 시절 농촌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봄철에 찔레순을 꺾어 먹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장미과에 속한 나무는 줄기에 가시가 있는데 찔레나무도 예외가 아니어서 줄기마다 가시가 난다. 가시는 대개 뿌리 쪽을 향해 나는데, 이는 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벌레들로부터 꽃이나 잎을 지키려는 찔레나무의 자기방어 노력 같다. 찔레가시는 애벌레 등 외부 침입자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지만, 모든 천적들로부터 자신을 완벽하게 지켜 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가 초식동물이나 애벌레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부단한 노력이라는 점에 있어서 찔레가시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며, 생명예찬의 노래라 불러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동양고전 시경에 ‘초상지풍 초필언 수지풍중 초부립(草尙之風 草必偃 誰知風中 草復立)’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지만,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선다.’는 뜻이다. 찔레꽃은 바람이 불면 이리 저리 흔들리고 눕고 꽃이 떨어지기도 하고, 어린 새순은 사람들에 의해 꺾이고 애벌레들에 의해 먹히기도 하지만, 바람이 잦아들기 전에 찔레나무는 줄기를 바로 세워 하늘 향해 가지를 키우며, 꽃진 자리마다 붉은 열매를 키운다.

사람도 찔레꽃과 같아서 실패와 시련을 겪게 되지만,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가을되어 붉은 찔레 열매 열리듯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찔레꽃을 붉다고 표현한 까닭은 어쩌면 아직 도전을 멈추지 않은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을 응원하기 위함은 아닐까? 오늘도 저마다의 대지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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