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선주

국립춘천박물관장·문학박사

국립춘천박물관은 강원 문화의 원형과 특징을 밝히기 위해 관동팔경 특별전을 지난해부터 개최해 오고 있다. 올해는 두 번째로 대한불교 조계종 낙산사와 공동으로 관동팔경 가운데 관음의 성지(聖地)로서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양양 낙산사- ’특별전시를 열어 많은 관람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관동팔경이란 통천 총석정에서 평해 월송정으로 이어지는 동해안 여덟 곳의 승경을 말한다. 바다와 접한 천혜 절경과 그 경치를 조망하는 누정과 사찰이 어우러진 관동팔경은 고구려의 힘이 강원 지역에 전해지거나 신라 문화가 북으로 뻗어나가는 주요 통로였으며, 신라의 화랑들이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 금강산으로 향하는 수행의 길이기도 했다.

관동팔경은 우리 민족의 영산인 금강산과 함께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발자취가 이어졌다. 이들은 기행문이나 시를 지어 당시의 풍광을 노래하여 많은 문학과 예술 작품이 탄생했다. 특히 조선 후기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와 같은 이름난 화가들이 이곳의 경치를 화폭에 담아 널리 알려지게 됨에 따라 조선시대 사대부와 문인들은 관동팔경과 금강산 탐승을 갈망했다. 금강산과 관동팔경은 국왕들에게도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1788년 정조는 자신이 직접 가보지 못한 금강산을 비롯한 관동지역의 경승을 보고자 당시 최고의 화원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로 하여금 이를 그려오게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정조의 명을 받아 김응환과 함께 금강산과 관동지역을 두루 탐승하고 정조에게 바쳤던 김홍도 그림 초본이 전시되고 있다. 이는 금강산과 관동팔경의 전체 풍광을 사실적으로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실경 자료로서 중요할 뿐 아니라 양양 낙산사의 복원에도 크게 활용되어 사료적인 기록화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입증하였다.

이번 전시는 관동팔경에서 양양 낙산사가 차지하는 문화사적 위치와 함께 관음신앙의 성지인 낙산사의 불교미술에 대해서도 폭넓게 소개하고 있다. 또한 낙산사를 중심으로 한 탐승과 기행을 통한 시문, 기행문학, 기행사경도 등과 같은 다양한 창작 활동을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강원도 예술가들과 함께 글씨와 그림, 시로 낙산사의 풍광을 되살려 과거의 문화유산으로써 의미 이외에도 전통을 재해석하고 계승하고자 하였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조선시대에 진취적인 강원도의 새로운 여성 예술가를 찾아 낸 것도 큰 수확이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원주 출신 김금원(金錦園)(1817~?)이다. 김금원은 당시의 여성으로는 드물게 부모의 배려로 여자임에도 글을 배울 수 있었다. 열네 살 때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금강산과 관동팔경 등의 명승을 유람하고 돌아왔으며 이 과정을 1850년에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라는 기행문으로 남겼다. 기행문에는 집과 가까운 제천 의림지와 단양팔경을 비롯, 삼일포와 명사십리를 거쳐, 간성 청간정, 낙산사 등 관동팔경을 둘러본 후 다시 설악산으로 들어가 대승폭포와 백담사, 수렴동 계곡을 유람한 뒤 한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담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금원은 자신처럼 예술적 재능이 있던 그의 동생 운초(雲楚), 경산(瓊山), 박죽서(朴竹西) 등의 기생들과 함께 시 모임 삼호정시사(三湖亭詩社)를 열었다. 이는 조선 최초 여성 시인들의 시 모임(詩社)으로, 여성 문학의 새 지평을 마련했다. 남녀차별이 심한 전통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글을 배우고 긴 여정의 탐승을 실행한 것은 매우 진취적인 자세이며, 이러한 기행에 바탕한 「호동서락기」는 시대의 한계를 초월한 여성답사기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전시를 개최하면서 관동팔경 탐승문화야말로 강원도가 내세워야 할 전통문화의 핵심 중에 하나임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후하여 세계적인 관광자원으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며, 남북으로 걸쳐 있는 관동팔경을 통해 북한과도 문화적으로 상호 소통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적극 개발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21세기 시인묵객들의 신 관동팔경 탐승이 활성화되어 관동팔경이 새롭게 부각될 수 있도록 강원도를 비롯한 고성, 양양, 강릉, 삼척 등의 지자체에서 각별한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관동팔경 문화가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이를 널리 알려 강원도의 살아 있는 문화 체험 프로그램으로 적극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원도민이면 누구나 관동팔경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 그리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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