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흥우

수필가·시조시인

시대의 발달은 교통기관의 변화를 주도했다. 2010년 12월 21일 춘천 서울 간 전철개통은 춘천시민들에게 교통편익을 크게 개선해주었다. 거기에 더하여 2012년 2월 28일 ITX청춘열차 개통은 특히 서울과 춘천을 이어주는 말 그대로 젊은이들의 청춘을 이끌어주는 열차가 되었다.

전철이 개통되면 대개는 서울시민들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서울사람들이 찾아들어 지방특산음식점이 붐벼지고 땅값에 아파트값이 치솟는가하면 관광수요가 늘어난다. 서울시민들의 생활영역이 늘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인 춘천시민들의 서울을 이용하는 능력도 늘어나게 된다. 나 또한 춘천시민으로서 서울지리를 익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을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먼저 시작한 것이 서울에 있는 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산의 위치를 알게 되면 자연히 서울지리를 알게 될 것이다. 게다가 경로우대제도가 있어 전철은 무임승차가 가능하니 서울을 오가는 데는 교통비가 없어도 가능한 것이 서울 산행을 더욱 강하게 유인하였다. 더러는 산하면 강원도인데 왜 공기도 별로인 서울 산행을 하려고 하느냐고도 했지만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동안 서울을 스쳐 지나면서 멀리 하얗게 드러난 서울의 바위산들이 올라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월1회 서울산행을 하다가 너무 주기가 길어서 주1회 매주 수요일마다 산행을 하기로 했다. 혼자만은 무료할 것 같아서 동지를 구하기로 했다. 학교동문회, 이웃 등에 취지를 이야기하고 매주 수요일 남춘천역에서 아침 7시 30분에 떠나는 상봉 행 전철을 타기로 했다. 별도의 연락도 없고 누구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뜻이 같은 사람이 같은 시간에 나와서 남춘천역 대합실에서 만나 동행하자고만 하면 남자고 여자고 나이가 많고 적고를 불문하고 동행을 했다.

관악산, 우면산, 도봉산, 북한산, 수락산, 청계산, 남한산성, 용마산, 아차산을 비롯하여 북한산 둘레길 21개 구간을 완주했고, 소요산 등 서울 주변 산도 찾았다. 산마다 오르는 길들이 많아서 이 곳 저곳을 탐색하면서 몇 번씩 오르기도 했다. 산마다 해당 지방 자치단체가 산행 길을 정비해놓은 것에 감사했다. 가파른 비탈길엔 계단을 만들고 바위틈새에는 쇠말뚝을 박고 튼튼한 밧줄을 매어놓아 산행 길 안전을 도모해 준 것이며 이정표를 만들어 안내를 해주고 관리사무소를 설치해서 궁금증을 해소해주기도 하고, 곳곳에 화장실을 그 것도 아주 쾌적하게 마련해놓은 것이 고마웠다. 산 입구와 출구 근처의 식당들도 대개는 친절하고 좋은 식사를 대접받을 수 있었다.

서울에 있는 산들을 모두 다녀보지는 못했지만 동서남북의 산들을 찾아보니 서울지리가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서울의 산들은 과연 명산이었다. 긴 세월을 겪어오면서도 하얗게 그을리지 않은 바위들이며 계곡의 아기자기한 모습에다 계곡마다 발달한 너럭바위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골짜기마다 크고 작은 사찰이며 서려있는 이야기들과 산기슭에 자리 잡은 수많은 애국선열들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의 묘소들 모두가 가슴을 설레게 하면서 조선 건국 초에 태조 이성계를 도와 정도전과 무학 대사가 수도를 정하는데 서울의 산세가 큰 몫을 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했다.

이제 서울 어디라도 찾을 수 있고 어디를 가도 낯섦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서울로 장을 보러 갈만해진 것이다. 노량진 수산시장이며 경동 약령시장, 가락동 농산물시장 등을 돌면서 농수산물 시세를 알아보기도 했다. 무엇인가를 생산해서 돈벌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시골노인으로서는 장족의 발전이다.

춘천의 한 시민으로서 서울을 적극적으로 이해하여 서울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이점을 어느 정도 찾아 활용할 수 있게 되어 가슴 한 녘이 차오르는 것 같다. 한 평생 서울을 전연 모르는 촌로로 끝내는 줄만 알았다가 내 한 생을 마감하기 전에 전철이 이런 좋은 기회를 가져다주어서 꿈만 같다. 이런 큰일들을 이루어내서 혜택을 누리게 해준 관계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