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첫 승리… 역전 기회 제공
심일 소령 등 6명 육탄 특공대 조직
수류탄·화염병만으로 적 전차 격파

▲ 춘천시 삼천동 춘천지구전투전적비

춘천지구전투는 6·25 전쟁 발발 직후 거둔 국군의 첫 승전이다.

민·군·경이 합심해 북한 2군단의 공격을 3일 동안 지연시켜 춘천과 수원을 거쳐 서울을 포위하려던 북한군의 ‘3일 작전’을 좌절시켰고 낙동강 방어선 구축과 우리 군의 전세 역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부슬비가 내리던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2군단 병력 1만여 명이 배후령을 넘어 춘천으로 침투했다.

북한군은 122㎜ 곡사포와 76.2㎜ 대전차포, SU-76 자주포를 앞세워 공세를 펼쳤다.

이에 맞선 국군은 105㎜ 야포와 소총이 유일한 화기였다. 그러나 국군에는 춘천시민들이 있었다. 당시 시민들은 피난을 떠나지 않고 6사단 7연대에 힘을 보탰다.

6사단의 방어작전은 필사적이었다. 방어선이 뚫릴 경우 수도 서울이 포위되기 때문이다.

국군은 백병전까지 불사하며 3일간 춘천지역을 사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6사단 7연대 대전차중대 2소대장인 심일 소령은 김기만 중사, 박태갑·홍일명·조칠군 하사, 심규호 일병 등 5명과 육탄 특공조를 조직, 수류탄과 화염병만으로 적 전차 4대를 격파했다.

민·군·경은 이 전투를 통해 북의 침공을 3일간 저지했고, 이는 향후 우리 군의 사기를 높이는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북한 제2군단은 춘천을 거쳐 이천·수원지역으로 진출, 국군을 포위·섬멸하려던 계획에 차질을 빚자 군단장과 제2사단장, 제7사단장을 해임했다.

현재 춘천시 삼천동에는 6·25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은 춘천지구전투 전적비와 기념관이 세워져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웅변하고 있다. 정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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