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열

영동본부 취재국장

지난해 9월 기자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강릉시 옥계면이라고 밝힌 수화기 너머 목소리의 주인공은 “마을에서 자꾸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병원의 소독 약품 같기도 한데, 마을에 공장이 들어선 뒤부터 냄새가 시작됐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발신인이 지칭한 그 공장은 대기업 포스코가 세운 국내 첫 마그네슘 제련공장이다.

포스코가 어떤 회사인가. 1960년대 제철보국(製鐵報國)을 기치로 내걸고 연오랑·세오녀의 설화가 깃든 포항의 허허벌판 모래사장 ‘어링불’에서 출발해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일등기업의 대명사다. “조상의 혈세인 대일(對日)청구권자금이 투입된 만큼 종합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현위치에서 모두 ‘우향 우’ 해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는 ‘우향 우’ 정신으로 신화를 일군 기업이다.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종합제철은 건설 당시, 부실과 허점을 극도로 경계했다. 쇳물을 다루는 제철소에서 부실시공은 돌이킬 수 없는 대형 사고를 부르고, 더 나아가 가난한 나라에서 조상의 핏값으로 천신만고 끝에 첫 삽을 뜬 사업의 실패로 귀결되기 때문이었다.

기초 파일을 부실하게 박은 설비회사의 일본인 감독이 무릎까지 꿇고 용서를 빌어야 했던 일화는 포철이 어떤 각오와 정신 아래 탄생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랑처럼 널리 회자됐다. 당시 박태준 사장은 “너희 나라 공사도 이런식으로 감독하나. 이 나쁜 놈아”라고 일본어로 신랄하게 꾸짖는 것도 모자라 들고 있던 지휘봉으로 일본인의 안전모를 사정없이 내리쳐 지휘봉이 두동강이 날 정도로 격노했다. 또 철 구조물의 연결 볼트가 허술하게 조여진 것이 눈에 띄자 무려 24만개에 달하는 볼트에 분필을 칠해가면서 일일이 다시 조사토록 해 400여개의 부실 볼트를 찾아내기도 했다.

강릉 옥계의 마그네슘 제련공장은 그런 치열한 노력 끝에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포스코가 세운 사업장이기에 주민이 지적하고 있는 냄새도 곧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불쾌한 냄새는 1년이 다 되고 있는 오늘도 마을에 남아 있다.

그런데 엊그제는 그 공장에서 독성 발암유해물질인 페놀이 다량 함유된 오염수가 지하로 흘러 토양과 하천을 오염시키는 폐기물 누출 사고까지 발생했다.

지금까지 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공장내 석탄가스 생산공정의 순환수를 저장탱크로 이송하는 연결배관 접합부에서 균열이 발생, 타르 성분의 오염수가 지하로 누출되고, 인근의 교량건설 현장에서 터파기 작업 중에 솟아 나와 결국 바다로 연결되는 하천으로 유입되는 상황이 빚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공장 관계자는 “연약지반 침하 현상이 생기면서 뒤틀림 때문에 시설에 균열이 발생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아직 냄새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환경오염 사고까지 유발한 공장 측으로서는 참 민망하고도 다급하게 됐다. 포철 건설 당시의 일화를 현 상황에 대입한다면, 안전모를 내리친 지휘봉이 몇 개가 부러져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마그네슘 제련공장은 사실 비철금속소재산업을 일으키려는 강릉시에서 ‘앵커기업(유망 성장업종의 중심기업)’이기도 하다. 강릉시와 강원도가 연관기업을 유치하고, 마그네슘 공장 주변에 경제자유구역을 육성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기에 앵커기업은 흰 눈밭위에 첫 발자국을 남기는 선발주자처럼 삼가고, 살펴서 지역내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상생발전의 길을 닦아주는 것이 책무이면서 과제다. 마그네슘 공장 자체적으로도 현재 연간 1만t 시설에서 4만∼5만t을 추가로 증설하는 2단계 확장공사를 앞두고 있는 중요한 시기다.

그런데 그 사업장이 자꾸 근심거리를 유발하고 있다. 영일만에서 부실과 허점을 용납하지 않았던 절박한 기업정신이 40년이 지나 배부른 큰 기업이 되면서 속절없이 퇴색된 것인가? 아니면 지역사회의 기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신사업을 키우는 데만 급급하기 때문인가? 지금 강릉시와 시민들은 포스코 마그네슘 공장에 영일만에서 꽃 피운 기업정신까지 가져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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