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영승

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행정학박사

“너의 조선은 결코 우리 일본을 넘어설 수 없다” “나는 너희가 두렵지 않다. 절대 오늘을, 나를 잊지 말거라”

김용균 감독, 조승우, 수애 주연의 2009년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마지막 대목에서 민비를 시해한 일본군관과 민비의 대사다.

우리는 정말 일본을 넘어설 수 없을까? 역사학자 등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외적조건으로는 넘어서기 쉽지 않다.

일본의 국토와 인구는 한반도에 비하면 1.5∼2배 가까이 된다. 영해(領海)까지 치면 자원의 차이는 더 벌어진다. 더구나 우리는 남북한 통일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치르지 않아도 될 통일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의 역사를 보자.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2만년전 빙하기에 일본으로 유입된 사람들이 진화해 오늘의 일본인이 됐다고 본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에서 유목을 하던 기마민족이 AD4세기 무렵 한국을 거쳐 일본을 정복했다는 이론도 있고, 현 일본인들은 BC 4세기 무렵 한국에서 벼농사와 함께 이주한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일본의 현재는 과거 한반도문물의 영향을 받은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영원한 제국은 없고 역사는 흥망성쇠하기 마련이다. 장구한 인류역사를 길게 조망해보면 부침(浮沈)과 순환이 교차하는 것 같다. 인류역사는 인간이 유인원에서 갈라져 나온 700만년전부터 발아를 시작해 최종빙하기가 끝나던 1만 3000년 전에 본격 시작됐다. 인간은 1만년전쯤부터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면서 정주생활을 시작했고 현대문명의 토대를 쌓기 시작했다. 현대서구문명의 발원지는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나일강 등 중동(근동)지역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BC 4세기 경 주도권을 유럽으로 넘겨주고 오랜 세월, 석유가 나기 전까지는 옛 영광을 그리워하며 퇴락한 삶을 살아야만했다. 왜 그랬을까? 이른바 정치지도자들의 통찰력과 판단,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방목, 벌채, 개간 등으로 자연을 황폐화시켰고 최대의 자원인 농산물과 가축이 줄면서 몰락의 길을 가게 됐다. 개인이나 국가나 우선 선택을 잘한 다음 노력해야 한다. 오늘날의 벌거숭이 북한이 딱 그런 형국이다.

중국은 어떨까? 중국은 중동보다 다소 늦었지만 별도의 문명시대를 개척했다. 중세까지만 해도 유럽을 앞설 정도로 강했다. 그런 중국이 어찌하여 유럽, 일본에 먹히는 수모를 당했을까? 역시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다.

재래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 따르면 중국은 주철 나침반 화약 종이 인쇄술 등을 발명했고, 항해술에서도 세계를 선도했다. 15세기 초 수백척의 선단들이 세계를 누볐고, 120m나 되는 배도 있고, 선원이 2만 8000명이나 됐다고 한다. 그러나 정파들 간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쪽이 선단파견 중단, 조선소 해체, 항해 금지 등의 조치를 취했다. 중국은 또 앞서나가던 수력방적기의 개발과 시계기술을 폐기하는 등 15세기말 이후 스스로 기술후퇴의 길을 택했다. 최근 문화대혁명 때는 모든 학교가 5년 동안 문을 닫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조선중기 이전까지 한국에 뒤처져있던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한 것은 우리보다 먼저 서구문명을 받아들인 결과다. 분명 문명에서 앞섰던 한반도가 일본에 먹힌 것 또한 정치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다.

인류문명의 확산은 피를 동반했다. 신기술을 앞세운 부족 사회 민족 국가가 자기보다 못한 지역을 점령해 나가는 과정은 살육의 연속이었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 일본군도에 찔린 민비의 몸에서는 선혈이 쏟아졌다. 우리는 이후 엄청난 피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일본을 넘어서려면 정치인들의 애국심 통찰력 지식 등에 기반한 올바른 판단이 우선돼야 한다. 정치인들의 정책결정의 상당부분은 관료조직의 지식과 정보에 의존하므로 관료조직 또한 중차대하다. 물론 그 기저에는 탄탄한 도덕성과 정치인을 고르는 국민의 현명한 선구안(選球眼)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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