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장진

수필가

“벌써 4시야요.”

화장실로 뛰어들어 눈과 입술, 입속에 물맛을 보인다.

“이거 바르세요.” “세수도 안했는데…” “저기 작업복도 갈아입고, 상의는 안에 티셔츠를 받쳐 입고.”

작업도구, 비료, 마실 물 등 짐 꾸러미들을 몽땅 들고 내려가려니, 두 개는 낚아챈다.

오늘은 몸이 가벼운 걸 보니 일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강원대 후문에서 김밥 4줄을 산다. 찻길 신호등은 깜빡등이 많아 중앙고속도로 들머리까지 잠깐사이에 왔다. 주말나들이 가는 차들이 몇 대 앞에서 새벽길을 열어가고 있다. 김밥을 한 토막씩 넣어주면서 먹다보니 어언 홍천 텃밭에 도착했다. 옥수수가 멀쑥하게 자라서 벌써 개꼬리까지 나와서 으스댄다. 옆집 것보다 한참 늦게 심었는데, 비닐멀칭재배 덕이리라.

“저는 김을 맬 테니, 당신은 쉬운 일만 골라 하세요. 우선 땅콩포기 비닐을 너덜너덜해도 좋으니 넓게 찢어 주세요.”

그거야 누워 떡먹기다. 가로 세로 넓게 찢어 너덜거리는 부분은 꺾어 속으로 쑤셔 넣는다. 이것도 거둬들이면, 친지들께 나눠 주는 걸 빼곤 거의 다 내가 먹을 것이다. 다음은 요소 비료주기. 옥수수 그루트기 비닐을 찢고 주자니 성가시다. 멀칭 안한 쪽부터 준다. 먼저 준 복합비료가 아직도 녹지 않아 토끼 똥처럼 몰려있다. 비료상식 부족 탓이다. 비닐을 찢어 줘서 쉽게 던져나간다. 밀짚모자를 썼는데도 날카로운 옥수수 잎이 얼굴을 할퀸다.

다음은 몇 그루 안 되는 고추 손질. 싱싱한 풋고추를 한 봉지 그득 따니 흐뭇하다. 지주에다 2차로 끈을 묶고 비료를 준다. 야콘에도 비닐 속으로 비료를 넣어준다. 역시 먼저 준 거름이 녹지 않고 있다. 지금 쯤 무성하게 자라있어야 할 텐데, 이상하다 했더니…. 띄엄띄엄 솟아있는 상추 잎을 딴다. 탐스럽다. 여기 저기 뽐내고 있는 자소 엽과 깻잎도 알뜰히 딴다. 향기가 코를 찌른다. 손 전화를 열어 본다. 벌써 10시다. 오늘 기온은 33도를 넘는다는데 쉬지도 않고 무려 5시간을 꼬박 땀 흘렸다. 나는 물 마신다고 연신 왔다 갔다 하면서 허리도 피고 퍼질러 앉아 숨도 골랐지만, 이 사람은 잠시도 호미를 놀리지 않았다. 무쇠덩어리인가? 볼 일 생길까봐 물 한모금도 안 마신다. 옥수수 밭고랑에 들어가면 아무도 못 볼 텐데도. 팥 밭, 옥수수 밭에 이어 고구마 밭 김매기에 정성을 쏟는다.

“이제 그만합시다.” “당신은 옥수수 밭 응달에서 쉬세요. 하던 건 마쳐야지요.”

빼곡한 고구마 넝쿨 뒤지며 풀 뽑기에 여념이 없다. 할 수 없이 하다 남은 옥수수 밭골 김매기에 들어간다. 왼쪽 무릎을 땅에 박아가며 어슬렁어슬렁 한 시간을 훌쩍 넘긴다.

드디어 150평 밭이 더벅머리 깎은 듯 깨끗해 졌다. 후련하다, 대견하다!

더위에 모기가 정신 나갔나? 밉상인 나한테는 안 달라붙고, 곱상인 그미만 괴롭혔다니….

“여보, 진통제 어디 있어요, 허리가 하도 아파 막국수 닭갈비 축제에 못 나갈 것 같아요.”

‘철없는 머슴, 언제나 철이 들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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