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정 아

강원랜드 테이블영업팀 업장관리자

며칠 전 고향 춘천을 다녀왔다. 아직은 고향이라도 부모님처럼 가슴에 와 닿지는 않지만 이번 고향은 모처럼 느낌이 컸다. 모교를 돌아본 날이다. 교동에서 누구보다 가깝게 학교를 다닌 나는 모교가 만천리로 이전했다는 소식만 접했지 실제 느낌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춘천여고, 봉의산 아래 날개를 펴고 품에 안겨있던 모교를 찾은 것은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주인을 잃은 학교는 묵묵히 말이 없었다. 3년간 목백합 나무 아래에서 소녀의 꿈을 키우던 나의 모교, 윤서연하고 단짝이 되어 인생을 논하고 사랑을 키우던 모교가 아닌가!

우리의 사랑일세 춘천여학교, 배우며 뛰노는 우리 낙원 백합꽃 맑은 향기 온 몸에 받아 깨끗하고 순결함은 우리의 자랑이란 교가만 나오면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고등학교 시절 꿈 많은 소녀였던 나는 그 날도 숨 가쁘게 낮은 돌담길을 오르며 분홍빛 꿈을 키우던 학교 정문에서 그 혼이 사라진 폐교를 홀연히 문틈으로 바라보았다. 교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안내문을 바라보면서 벌써 내 마음은 90년대 후반으로 돌아가 가슴 부푼 소녀가 된다. 이곳저곳에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고교시절의 추억들. 정봉환 담임선생님의 태평양 같이 드넓은 인품이 생각난다. 일체 유심조란 급훈이지만 무슨 뜻인지도 모르던 시절. 그저 좋은 내용이라고만 여기던 웃음 많던 여고시절이었지.

지금도 인생의 단짝인 윤서연 친구는 너무 소중하다. 엄마가 보건소에 다녀서 자주 들러 뒹굴던 그 시절이 그립다. 지금도 서연이는 자주 만난다. 동시 통역사로 국내외에 자리매김해 이름을 떨치지만 아직도 소양강을 닮은 미소는 영원하다. 그때의 모교가 교동시대를 마감하고 만천리 송림 한가운데에 포근히 날개를 접고 싱그러운 얼굴로 오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대학 캠퍼스 같은 나의 모교 춘천여고지만 자꾸 교동시절의 학교가 그립다.

어렵던 시절 꽤 많은 보충수업비를 부모님한테 타가지고 학교 가는 도중 분실해 몇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울 때의 아픔은 삼십대 중반을 훌쩍 넘긴 지금도 아리고 쓰리다. 등을 따스히 다독이시던 부모님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보람찬 사회생활을 해나가지 않는가! 오랫동안 쭈뼛쭈뼛하면서 마치 사랑하는 이와의 첫 만남처럼 날개접은 학교 이곳저곳을 훔쳐보고 왔다. 어떻게 변할 것인가? 무엇으로 이 터전은 거듭날 것인가? 기대된다. 피곤한 육신만 남고 영혼은 더 좋은 곳에 안착되어 후진을 양성하지만, 오늘 뉴스에 몇 번의 교육청 입찰에 유산된 나의 모교 터전이 어떻게 변신할까가 사뭇 의문이었다. 해맑던 소녀시대 꿈 많던 시절 서연이와 나를 키워준 폐교를 훔쳐보고 돌아온 날 떠난 님처럼 훌륭히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자고 빌고 떠났다. 서연아! 네가 기대어 나를 지켜보던 목백합이 울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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