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병로

사회부장

78.75㎜. 지난 14일 오전 춘천지역에 쏟아진 시간당 강수량이다. 이 비로 춘천시 퇴계동 저지대와 약사천 상류지역 일대가 삽시간에 물바다가 됐다.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역류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저지대 주민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주민들의 고통은 14일 ‘하루’에 머물지 않았다. 이튿날에도 폭우가 쏟아졌고, 피해는 반복됐다. 침수지역 주민들의 고통은 1주일이 지난 현재까지 아물지 않고 있다. 행정기관과 시민단체,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아픔을 나누고 있지만, 고통이 치유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피해 원인을 놓고 벌어지는 공방도 뜨겁다. 시간이 지나면서 납득할 만한 정황과 사실이 밝혀지고 있지만 행정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여전하다. 특히 빗물 역류 피해를 입은 약사천 상류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거세다. 부실한 하수관거가 화를 키웠다. 춘천우체국∼외환은행 뒤편으로 이어진 하수관거는 10년 주기 최대 강수량을 기준으로 1980년대에 설치됐다. 통수 능력은 시간당 30㎜ 이내 강수량. 지난 14일 내린 시간당 강수량이 78.75㎜인 점을 감안하면 역류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하수관거 내부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주민들은 “하수관거의 통수단면이 불규칙해 병목현상이 발생한 데다 오우수분류화 사업, 약사천 환경유지용수관 설치 사업 등 각종 사업이 복잡하게 진행되면서 통수단면이 크게 줄었다”고 주장했다. 상·하류지역에 매설된 하수관거의 크기가 서로 달라 병목 현상이 발생했고, 각종 공사가 진행되면서 하수관거 내부에 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콘크리트 덩어리 등 찌꺼기가 쌓이면서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춘천시는 하수관거 내부 환경이 변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주요 원인은 통수 능력을 초과해 쏟아진 강수량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재와 자연재해라는 양측의 주장은 최종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수해 이후 춘천시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 문제도 쟁점이 되고 있다.

퇴계동 저지대를 비롯한 도심지역 주민들은 춘천시 등 치수 관련 기관의 허술한 위기 대응체계를 문제 삼으며 시 행정에 강한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위기 대처능력도 문제 삼았다. 이같은 문제는 폭우가 쏟아진 지난 14일 이후 춘천시가 보인 행태에서 비롯됐다. 중앙고속도로 IC 인근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수 천대의 차량이 2시간 넘게 발이 묶이고, 국도 우회로가 낙석과 토사유출로 아수라장이 됐지만 현장은 몇 시간 동안 방치됐다. 고속도로에서 국도로 우회하는 차량들은 돌무더기를 스스로 치우며 겨우 빠져나와야 했다.

수해 이후에 춘천시와 시의회가 보인 행태도 볼썽사납다. 수해복구가 이뤄지는 동안 춘천시의회는 집행부를 상대로 행정사무감사를 벌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집행부 간부와 시의원이 수해 사태와는 관계없는 문제로 시비를 벌이고, 급기야 경찰서에 문제해결을 의뢰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단체장과 시의회가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연출한 것도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두 사건 모두 수해와는 관계없는 사안들이었다. 수해 대책을 세우고, 수재민들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춘천시와 시의회가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수해지역 주민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춘천시와 시의회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잣대로 수해 원인과 향후 대책을 따졌어야 했다. 그러나 두 기관이 보인 모습은 기대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시민들의 신뢰를 얻기에는 민폐가 너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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