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학재

워싱턴문인회

춘천의 먹거리 하면 당연히 닭갈비, 막국수다.

춘천에 와서 닭갈비, 막국수를 먹어보지 못하고, 의암댐 소양강댐을 보지 못하면 춘천에 온 의미가 없다.

닭갈비는 닭의 갈비 자체가 아니라 닭 전부를 6개 또는 8개로 토막 낸 닭 토막이다. 이 토막을 포를 뜨듯이 두툼하게 펴서 재웠다가 갖은 양념과 야채로 큼직한 철판에 볶아먹는 요리다. 닭갈비는 술안주이자 밥이다. 닭갈비를 다 먹을 즈음에 밥을 넣어 닭 기름 볶음밥으로 푸짐한 저녁상이 되는 것이다. 1960년~70년대에 춘천은 군인과 사람이 섞여 살던 군사도시 그리고 캠프페이지 미군부대가 춘천의 서쪽을 반이나 점령했던 기지촌일 때, 닭갈비는 춘천시민들의 고마운 밥상이었다.

일선에서 외출 나온 군인 아저씨들, 도청소재지인 춘천의 여러 직장인들, 그리고 막일로 생계를 이어가던 노동자들이 부담 없이 술과 밥을 먹을 수 있던 착한 술집이요 식당이었다. 그렇게 이름 붙여진 닭갈비가 지금은 막국수와 짝을 지어 춘천의 명물 향토음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막국수는 그 유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산간지방과 화전 밭에 재배되는 메밀 가루를 반죽해서 국수틀에 뽑아낸 면을 금방 삶아서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는 시원한 국시다. 춘천지방에서는 국수를 국시라고 한다. 이 국시를 야채와 양념으로 버무려 식초 겨자 육수를 곁들여 비벼 먹기도 한다. 막국수에는 돼지고기 한 장이 명찰을 달고 나오는 춘천의 향토음식이다. 곁들여 메밀부침개, 메밀 총 떡을 한 접시 받아 놓고 시원한 동동주 막걸리로 거나해지면 빌어먹을 세상도 살만하게 느껴진다.

조선시대 임진, 병자, 양란으로 국토가 피폐해지고 설상가상으로 흉년까지 들어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시절에 강원도 산비탈이나 화전밭에 재배한 검틱한 메밀가루로 수제비나 칼국수를 만들어 허기를 달랬다, 그러다가 국수틀이 보급되면서 막국수를 만들어 먹게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메밀은 혈액순환과 고혈압 예방에 효능이 있는 건강식품이다.

지금처럼 돼지 삼겹살을 즐겨먹는 도시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건강식품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막국수 애호가로 서울서 헬리콥터로 막국수와 막걸리를 공수해 갔다는 소문도 있으니 막국수는 서민음식이면서 상감마마 수라상에도 올라가는 음식이다.

막국수는 음식에 멋이 들어가거나 잘난 척 손재주를 가미하면 전통음식의 맛을 망칠 수도 있다, 메밀국수는 거무스레 하고 투박하고 까칠하면서 구수한 맛이 있어야 한다. 쉽고 간편한 요리로 시골티를 풍겨야 한다. 이것이 전통 막국수의 특징이며 자존심이다. 막국수는 시골냄새 풍기고 사람냄새 정겨운 순박한 강원도 사람 같은 음식이어야 꾸준히 사랑을 받는다. 막국수는 대접 받는 사람이나 대접하는 사람이나 부담이 없어 좋다. 서울 가서 고급음식으로 대접받고 춘천에서는 향토음식 막국수로 대접할 수 있으니 착한 막국수 착한 식당이로다.

이것뿐이 아니라, 춘천에는 오랜 전통을 이어오는 보신탕도 있다, 개고기 먹는다고 야만인이라 한다면 네발 달린 것은 책상만 빼고 다 먹는 중국사람들은 어찌할까. 조선시대 혜경궁 홍씨 회갑연에 狗蒸(구증=개고기찜)이 올랐고 ‘농가월령가’ 에는 며느리가 친정에 갈 때 개를 삶아 가는 풍속도 있었으니 우리의 음식으로는 오래된 먹거리였다. 보신탕은 삼계탕 흙 염소탕과 함께 여름철이나 노년에 원기회복으로 사랑 받는 좋은 보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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