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환

춘천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자동차 앞 유리에 물이 흘러 내렸다. “비가오나? 차 타기 전에는 맑았는데?” 와이퍼를 움직여 닦았다. 물은 여전히 흘렀다. “이상하다 왜 닦이지 않는거지”. 눈물이 앞을 가리는 줄 몰랐다. 내가 울고 있었다. 설곡산 수련원에서 청소년 수련회를 인도한 마지막 날 전화벨은 슬프게 울렸다. “목사님 찬문이가 죽었어요”. “찬문이가요?”. 숨이 막혔다. 곧장 그가 있는 병원으로 달렸다. 뿌연것들이 창문을 막았다. 줄줄 흐르는 내 눈물이었다.

그의 시신을 끌어안고 “하나님 살려 주세요. 찬문이를 살려 주세요”라고 외쳤다. 차가운 그의 몸을 만지고 두드려도 기척 없었다. 나의 무능력을 탄식하며 몸부림쳤다. 15년 전쯤 그해 여름 폭우(暴雨)는 경기도 지역을 휩쓸었다. 군대를 갓 제대한 찬문이는 착했다. 교인인데 군대가서 담배 피우는 것을 고백하며 죄송하다고 편지에 썼다. “제대하면 목사님께 힘이 되어 드릴게요”라며 누구보다 자주 전화하던 스물세살 아이였다.

그해 그날도 비가 왔다. 물에 잠긴 의정부 지역은 자원봉사자가 필요했다. 찬문이는 새벽 6시에 수해지역에 봉사하러 갔다. 그날 따라 나에게 말도하지 않고 갔다. 친구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갔다. 도로에서 미끄러졌고 마주오던 트럭과 충돌했다. 죽었다. 믿기지 않았다. “목사님 찬문입니다”. ‘충성!’하고 전화할 것 같은 그날. 그의 장례식을 치르며 허공 바라보는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말이 필요 없었다. 함께 있어 주었다. 의인은 세상에서 더 큰 화액을 당하지 않게 일찍 데려가기도 한다는 말씀이 크게 와닿지 않은 채로 울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이웃들 도와주러 가다가 하늘나라 갔다. 하늘에서 상 받을 것이다. 악을 행하며 죄짓고 고난받지 말고, 선을 행하다 받는 고난을 감사해야 한다. 죽음은 슬프다. 눈물의 현장에서 희망을 주는 것이 목사다. 그해 여름을 나는 잊지 못하고 품고 있다. 올해 여름은 지난해보다 더 많은 비가 왔다. 영미권사가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시간 횡성에서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하고 있던 나는 아찔했다. 엊그제 아버님하고 통화했는데. 바로 달렸다. 흐르는 눈물은 닦을 만큼의 양도 되지 않았다. 마음이 울었다.

해마다 삼복더위가 되면 복 땜하는 음식을 잡수셨느냐고 전화하시던 노신사! 무릎수술 하시어 교회 2층 계단 올라오기 힘들어 하시면서도 기어이 예배하는 열정 청년! 1년에 한두 번은 교역자 전부를 초청하여 최고의 음식을 대접하시던 넓은 아버지. 자신보다 훨씬 키크신 아내의 손을 잡고 안내자가 되어주셨던 이 시대의 로맨틱 가이. 81세 청년은 새교회당에서 예배하는 꿈만 남겨둔 채 더 아름다운 성전이 있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꼭 한 번 안아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못 안아 드렸어요”라고 말하며 울먹일 때 나도 아버지를 안아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120년을 살았던 모세는 “인생의 시간을 지혜롭게 계수하여 하루하루, 아니 순간순간을 지혜롭게 선하게 살라고 하였다”(시90:12). 올해 여름은 그분의 죽음이 빗물처럼 깨끗하다. 유난히 눈물이 많고 뜨겁다. 그래도 아버지의 체온을 가슴에 닿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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