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에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란 말이 나온다. 나쁜 일일지라도 반복하게 되면 평범한 사람들 조차 어느 결에 그 나쁜 일을 돕고 있게 된다는 관성의 폐해를 지적한 말이다. 잘못을 저지르면 처음에는 후회하고 자책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악에 노출되는 횟수가 많을수록 윤리의식이 사라져 뭐가 잘못되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뇌는 익숙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습관처럼 욕을 해대는 것도, 그 욕설이 날로 심해지는 것도 이 이론으로 설명 가능하다. 악이 무심결에 우리 삶 속에 자리잡는다는 이 이론은 아이들의 욕설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좋은 언어사용과 공공연한 계몽 등 어른들의 깨어 있는 의식이 늘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한국영화 속 욕이 난무하는 것과 인터넷의 악성댓글이 판을 치는 것과 정치인들의 막말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청소년들의 욕이 빠르게 퍼지는 것이 당연하다. 옳고 그름의 잣대가 희박해지는 정의 실종의 사회적 분위기가 아이들이 죄책감 없이 욕하는데 큰 기여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언어란 소통의 매체이기에 거친 언어는 배려 없는 마음을 전하게 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욕설을 걱정하는 이유도 욕설이 그릇된 언어사용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고맙다는 편지를 자주 쓰면 감사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 미덕이라고 말한다. 즉 덕이 있는 행동을 하다보면 나중에는 그 행동이 몸에 스며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언어는 좋은 행동태동의 근간이 될 수 있고 나쁜 언어는 나쁜 행동의 동기를 암암리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새누리당이 “새누리당을 마음껏 디스하라”며 자당에 대한 욕설과 비난 공모를 홈페이지에 실었다. 젊은이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욕 문화를 이용해 자당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자는 것인데 황당하고 부끄러운 아이디어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내용과 방법이 비도덕적인 것은 절대 옳지 않다. 모로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 의식은 국민의 좋은 삶을 지양하고 책임지는 정치인과 정당이 할 수 있는 생각으로는 적절치 않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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