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정록

경제부장

얼마전 대학 동문 모임이 있었다. 강원도 출신 동문기관장과 함께 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강원도 출신과 타지역 출신 일부가 함께 했다. 시간이 지나 자리를 주선한 기관장이 자리를 뜬 뒤 서울 출신 선배가 한 마디 건넸다. “강원도는 모이면 왜 강원도 이야기만 하느냐. 그러다 보면 강원도가 더 외톨이가 되는 것 아니냐.”

일순 뜨끔했다. 되짚어보니 대화 내내 강원도 현안과 인맥의 부재, 무대접 푸대접 등등을 놓고 장시간 얘기를 나눈 것 같다. 타지역 인사들이야 밥값하느라 공감의 추임새를 넣었겠지만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사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강원도의 부족한 인적 자원과 네트워크는 강원도를 둘러싼 담론을 전국적으로 확장시키지 못한 채 강원도만의 논의구조로 국한시켰다는 지적이 많았다. 강원도 입장에서야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어디 있겠는가. 동서고속철을 비롯해 동계올림픽과 고속도로, 신항만, 공항 문제까지 현안은 넘치고 또 넘쳐났다. 그렇지만 정부는 이런 저런 이유로 외면했고 어떤 일들은 슬쩍 뒤켠으로 돌려놓기도 했다.

그렇다고 강원도만의 ‘제3의 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체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대안으로 거론되는 ‘자본주의 4.0’처럼 위기극복을 위한 ‘강원발전 4.0’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곳간을 박박 긁어봐야 가용할 돈 한 푼 만들기 힘든 판에 스스로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 자체가 사치로 비춰질 수도 있다.

정부정책과의 교감 부족, 전국 눈높이에 한 참 뒤떨어져 있는 현실인식, 강원도 가치를 끌어내지 못하는 전략 부재가 장기화되면서 정부를 향한 투쟁의지는 다졌을지 몰라도 실익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강원도여 단결하라’라는 구호가 커질수록 스스로 고립되는 ‘불편한 역설’이 현실을 지배한 것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만 해도 그렇다.혹여나 IOC위원들이 넘어질 새라 눈을 치우고 말리던 강원도민들의 열정과 성의는 어디 가고 이제와서 주인행세는 누가 하는가. 강원도가 동계올림픽 이후까지를 포함한 동계올림픽의 의미와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정말 되묻고 싶다.

뿐만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의 시대를 내세우며 전통산업과 문화의 융합을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 4월에는 동아시아문화도시로 광주를 선정하기도 했다. 각 시도별로 문화적 가치를 내세운 지역발전전략을 마련하고 추진 중이다. 이 대목에서 강원도 자치단체들이 과연 새 정부의 어디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궁금하다.

최근 강원발전연구원이 북극항로에 대한 논의를 선점하자 부산권이 발끈하고 나섰다. 강발연측은 “부산권에서 강원도의 북극항로 추진상황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대판 붙었다”고 소개했다. 북극항로는 당연히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 몫인데 왜 강원도가 나서냐는 것이다. 이런 오만이 과연 정부와의 교감 없이 가능할까.

강원도가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한다면 이렇게 좋은 지역이 어디있겠나 싶을 때가 많다. 한 번 시장군수 되기가 어렵지 내리 3선 되기는 일도 아닌 곳이 강원도다. 이리 저리 눈치볼 일도 별로 없다. 공무원산업을 근간으로 한 산업구조는 경기도 별로 타지 않는다.

그렇지만 2013년 강원도는 너무 중요하다. 남북문제의 해법에 따라서는 강원도의 역할과 위상이 달라질 수도 있고 동계올림픽도 눈 앞에 다가오고 있다. 그뿐인가. 경제체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이 상황에 우리는 언제까지 ‘새장의 카나리아’처럼 우리 입으로 강원도만 이야기할 것인가. 이제라도 의제설정 능력을 높이고 교섭과 소통의 범위를 확장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닌가. 정부를 향해 겁주기가 안통한다면 최소한 대화는 돼야 하는 것 아닌가. 내년도 정부예산심의를 앞둔 8월에 불쑥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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