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문순

강원도지사

며칠 전 정부의 권유로 금강산에 40억을 투자한 기업가 한 분이 저에게 전화를 해 오셨습니다. 장례 보험을 팔러 오신다고 전화를 해 오셨습니다. 생계를 위해 장례 보험을 팔러 다니시는 것입니다. 고성 지역의 주민들은 빚을 얻어 건어물 가게, 기념품점, 횟집을 지었다가 빚 독촉에 시달려 야반도주를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 지역에 고아, 이혼 가정, 조손 가정이 많이 생겼습니다. 금강산 관광 사업을 하던 현대아산은 전체 직원 1600명 중에서 1400여명이 해고됐고 남은 인원들도 실제로 출근해서 일하는 사람은 몇 명 없습니다. 고향을 떠나 일용직으로 전전하고 계신 어떤 분은 강원도지사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저에게 분노를 표하고 계신 분도 있으십니다. 그 분들이 겪는 구체적인 고통은 여기서 다 글로 옮길 수 없습니다.

지난 8월 14일, 무더위 속에서 한줄기 시원한 낭보가 들렸습니다. 바로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기로 한다는 합의 소식이었습니다. 133일 만의 일이었습니다. 참으로 간절하게 원하던 결과였습니다. 주시할 것은 이번 합의문에는 ‘남과 북’이 주어로 작성되었고 앞으로 중요한 협의사항들과 운영을 ‘남북공동위원회’에서 하기로 한 점이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이전처럼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기는 일이 불가능해져서 남북 관계가 좀 더 안정적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환영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남북공동위원회는 중국과 싱가포르가 합자해 만든 쑤저우공단을 벤치마킹한 것입니다. 두 나라 정부가 협의체를 만들어 여기서 결정된 내용을 집행하는 형식이 도입된 것입니다. 또 공단 안에 중국이나 미국 등의 외국기업을 입주시켜 국제화를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국제화가 되면 그동안 개성공단의 큰 불편이었던 이른바 3통 문제 즉 통신·통행·통관 문제는 보다 개방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걸게 합니다. 앞으로도 남은 문제가 많습니다. 협상이 쉽지 않겠지만 협상 대표들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배전의 노력을 해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더 나아가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재개 문제에도 진전이 있다는 것이 우리 강원도민들에게는 큰 희망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금강산 관광재개에 대해 북측이 먼저 회담을 제안한 만큼 2008년 박왕자씨 피격 사건 이후 걸림돌이 됐던 재발방지, 신변안전, 금강산관광시설 재산문제 등에 대한 포괄적 합의도 전향적인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인한 도민들의 피해와 투자 기업들의 고통은 이제 더 반복해서 이야기하기도 민망할 정도입니다. 지금 남북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대화 재개를 보면서 모든 것이 반가운 마음이지만 대화의 주제와 초점이 교류협력 중단에 따른 주민들과 기업의 ‘고통’에 맞춰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강원도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제는 이러한 국민들의 현실적인 고통을 줄이는 일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개성공단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관광재개는 어느 것 중요하고 시급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번 남북대화는 이 문제들을 한꺼번에 풀어가는 용단이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 준다는 관점에서 남북의 큰 결단을 요청 드립니다.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는 말은 먹고 사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지난 60년 동안 강원도민들은 남북의 분단으로 인해 오래도록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이제 정부는 강원도의 아픔을 씻어주고 위로를 줄 순서입니다. 그것이 우리 강원도민이 희망을 가지고 이번 대화를 지켜보는 이유입니다. 양측 당국과 실무자들의 열정과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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