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일

강릉원주대 명예교수

부모와 자식은 많은 특성을 공유하는 혈연관계이고 적어도 30년 가까이 한 집에서 생활하며 고락을 같이 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이며,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 더구나 자식은 여러모로 부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어서 부모의 요구에 순응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가정교육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조성된다.

그러나 근래에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의 태도는 과거의 유물이 되고 있다. 용돈을 주지 않는다거나 뜻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부모에게 대들고 행패를 부리며 심지어 살상도 불사하는 패륜행위가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뺨을 때린 부모를 어린 자식이 경찰에 신고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들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매스컴에 보도되지 않은 특별한 상황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생각이나 사정을 우선하며 부모의 의사에 반하는 사례는 많다. 해외에 나가 독학을 한 후 현지에서 취업이라도 하면 귀국하지 않고 영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현지의 자유로운 생활이 좋아서 현지인과 결혼도 한다. 부모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않았으니 자기 주장을 떳떳하게 할 수 있다고 여긴다. 부모는 자력으로 생활한 자녀가 기특하고 대견하면서도 부모의 뜻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은 태도에 내심 서운함을 지우기 어렵다. 흔히 자녀는 자신이 잘 되는 것이 효도라고 말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쩐지 이기적인 변명처럼 들린다. 효도는 부모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어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녀가 성장 후에는 경제적 지원을 유보하고 자립을 촉구하였다면 기대도 크게 갖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에게 거의 모든 것을 주려고 하며 그에 따라 자녀에 대한 기대도 많이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자녀가 부모의 분신이거나 소유가 아님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자녀가 독립을 시도하면 제지하거나 반감을 표시한다. 부모는 자녀가 독립해도 가까이 있기를 바란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아무래도 대면하기 어렵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게 마련이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쓸쓸하게 생활하며 ‘고독사’하는 독거노인들 중에는 자녀가 있는 경우도 많다. 그 자녀들이 모두 부모에게 등을 돌린 패륜행위를 일삼지는 않았을 것이다. 멀리 떨어져 생활하게 되면 자신의 생계에 전념하다가 방문기회가 점차 감소되고 생각도 희미해져서 급기야는 무소식을 희소식으로 자위하며 지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과보호하며 지나치게 위하는 과정에서 의도와는 달리 자녀에게 남을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을 우선하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키운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 자신이 분주하게 지내기 때문에 자녀에게 충분한 관심을 보일 시간이 부족한 것은 대체로 사실이다.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에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하다가 그와 같이 변화되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또는 자녀의 기질에 그와 같은 성향이 있어서 바꾸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녀의 기본 행동은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학습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결국 부모가 자녀를 그렇게 키운 것이다. 고생없이 자란 자녀는 부모의 노고를 알 수 없다. 부모가 여유롭게 자신을 키운 것으로 여긴다면 부모의 은공을 크게 생각하게 되겠는가?

자녀도 그들 나름으로는 부모를 이해하며 위하려고 하겠지만 부모가 자녀를 위하는 것만큼은 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자신의 자녀를 위한 생활에 주력하다보니 부모를 소홀히 대하게 된 것이다. 자녀는 부모가 이 세상을 떠난 후라야 더 잘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아마 이러한 과정은 영원히 반복될지도 모른다. 부모의 생을 미리 살아볼 수 없기 때문에 부모를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너 닮은 아이를 낳아 키워 보라”는 부모의 말을 나중에 이해하게 될 무렵에는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 자녀는 젊을 때 그토록 부모의 몰이해를 원망하며 인정과 독립을 갈구했는데 막상 자신이 부모가 되면 자녀에게 같은 원망을 다시 듣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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