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건

동북지방통계청 춘천사무소장

통계 현장에서 겪은 미묘하고도 아날로그적인 단상(斷想)을 잠시 소개해 본다.

춘천으로 부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여름이었다.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 농가경제조사 표본 농가에 담당직원과 동행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한 농가에 다다랐을 때 담당 직원을 발견하고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노령의 할머님이 계셨다.

우선 집에 온 우편물을 한 아름 안겨주시며, 눈도 잘 보이지 않을뿐더러 서툰 한글 실력에 쉽게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며 우편물만 오면 답답하다는 말씀으로 시작하신다. 내용을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고 나오는데 미안하지만 TV가 나오지 않아서 그러니 TV 옆에 붙어있는 전화번호로 A/S기사를 불러 달라 부탁하신다. “제가 한번 보겠습니다.”하고 담당직원이 TV를 켜보니 아마도 리모컨을 잘못 눌러 놔서 그런 듯, 다시 제대로 맞춰 놓았더니 고맙게도 TV가 잘 나온다. TV가 잘 나오는 걸 보시더니 너무 좋아 하셨다. 그 동안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하는 생각과 현장 조사를 하는 담당 직원의 마음 씀씀이가 달리 보인다.

잠시 후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잠깐만 기다리라시며 냉장고에서 무언가 꺼내신다. 괜찮다고 극구 사양했는데, 같이 온 손님을 챙기지 못했다 하시며 잠시 후 무언가의 뚜껑이 힘없이 풀리며 내 손에 들어와 있다.

“고맙습니다”하고 마시려는데 손에 들려 있는 건 음료수가 아니라 감기약이 아닌가? 아무 내색 안하고 마시고 나오는데 그 어떤 음료수보다 시원하고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사무실로 오는 내내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지금도 시원한 감기약 한 병이 생각난다.

통계는 디지털 시대의 산물이다.

현시대의 빠른 환경 변화와 그 속도만큼 통계는 질적·양적으로 진화해 오며, 수요에 맞는 빅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현상과 정확한 분석을 위한 통계 개발, 개선이 진화의 시작점이 된 이상 앞으로도 통계는 사회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질 것이라 확신한다.

통계의 개발과 개선, 분석이라는 진화의 시작점에 통계청이 있다면, 일선에서 그 데이터의 생산 축을 담당하고, 조사 현장을 누비는 통계청 직원의 역할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정확한 통계자료 수집의 시작과 생산은 통계청 직원이 직접, 현장 곳곳을 일일이 방문해야 하는 아날로그적 방식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조사 현장에서 응답해 주시는 응답자들의 따뜻한 관심과 협조가 있어야만 아날로그의 미학과 통계가 비로소 시작되리라 본다.

위의 사례와 같이 통계조사를 담당하는 직원의 무궁무진한 에피소드와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가구 또는 사업체에서 통계청 직원을 만났을 때 ‘귀찮고 바쁘게 하는 공무원’으로 인식하기 이전에, ‘사무적이고 숫자만 아는 공무원’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기 이전에, 정확한 통계를 만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아날로그적 단상으로 채워줄 수 있는 고마운 응답자가 되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다.

19번째 통계의 날을 맞아 더욱 간절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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