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호

레포츠·뉴미디어 부장

한국 체육계가 초긴장 모드다. 정부가 체육계를 대상으로 고강도 사정 칼날을 세웠기 때문이다. 진원지는 체육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2일 노태강 체육국장을 전격 경질했다. 노 체육국장은 최근 문체부가 발표한 박근혜정부의 체육정책인 ‘스포츠비전 2018’과 체육단체 운영실태 전면감사 계획을 주도하는 등 정부의 체육계 개혁 실무를 맡아왔다. 유 장관은 체육국장과 함께 진재수 체육정책과장도 교체, 체육정책 핵심라인을 모두 바꿨다.

당연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례없는 체육단체 고강도 전면감사 계획을 주도해 온 체육국장의 경질로 체육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체육계에서는 유 장관이 전임정권 중에 비리와 사건이 잇따랐던 체육계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을 단행하기 위해 체육행정 라인에 책임을 묻는 인사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체육계 전면감사의 대상으로 학연·지연 등을 통한 조직의 사조직화, 단체장의 비리·이권개입·예산의 사적사용 문제 등을 꼽았던 문체부의 개혁대상이 어디로 향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역체육계에서는 문체부발 고강도 사정 칼날이 대한체육회와 종목단체 집행부 등 소위 오랜 ‘체육 권력’을 정조준하고 있어 시·도 등 지역체육계는 영향권에 들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사정 대상과 범위에 따라서는 후폭풍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지역체육계의 고질적인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그 만큼 본격 사정에 앞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체육행정부터 쇄신에 나선 문체부 개혁 의지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반증해 주고 있다.

이번 문체부 고강도 사정을 예의주시하는 지역체육계는 내심 “뒷 맛이 쓰다”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문체부가 전면감사의 대상으로 겨냥한 조직의 사조직화, 체육단체장의 비리·이권개입·예산의 사적사용 문제 등이 지역체육계에 없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과연 체육계에만 책임을 물을 일인지에 대해서는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많다.

중앙과 마찬가지로 ‘체육행정의 권력화’ 문제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닌 지역체육계 역시 면죄부를 받을 일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자치단체와의 태생적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체육계의 양대 조직인 도 및 시·군 체육회, 도 및 시·군 생활체육회 등이 운영예산을 자치단체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조직의 사조직화나 단체장의 치적홍보용 사업 예산 지원 등의 문제는 체육계의 의지와 상관없이 관행이 됐다는 지적이다.

또 자치단체장이 직·간접적으로 체육회의 인사권까지 낙하산식으로 행사하는 것이 당연시되다 보니 쇄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체육계는 을일 뿐이다”는 자조섞인 푸념도 나오고 있다.

도와 시·군체육회 회장을 자치단체장이 당연직으로 맡고 있으며 일부 자치단체장은 아예 규정까지 무시하는 무리수를 두며 체육회와 생활체육회 통합회장까지 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역체육계의 한 인사는 “선출직인 자치단체장이 사실상 인사권까지 휘두르는데 조직 줄세우기를 노린 것 아니냐”며 “체육계 쇄신에는 예산과 인사권을 가진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고 반문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중앙 조직이 내놓은 자정노력에 대한 지역체육계의 반응도 시큰둥하다.

국민생활체육회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지역생활체육회장과 종목별 연합회장 등 회원단체 임원의 임기를 한 번에 한해 중임을 허용한다는 제한 규정을 두기로 했지만 정작 지역체육계는 달라진 게 없다고 평한다.

현재 회장의 임기가 4년인데 중임이면 8년을 보장받는 것인데다, 종목별 회장들 상당수가 올해 바뀌어서 쇄신 효과보다는 전시행정에 가깝다는 시각이다. 현 정부의 첫 사정칼날에 체육계가 먼저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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