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규 한림대 교수

한국분권아카데미 원장

인구의 개념을 다시 생각할 때다.

맬서스의 유명한 저서 ‘인구론’은 과잉인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과잉인구로 인한 식량부족과 그로 인한 빈곤과 죄악의 문제를 주장한 고전이다. 맬서스의 사상은 정통파 경제학의 기반이 되었으며,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주었고 18세기 당시 사회에 적합한 진단이었다. 물론 그의 이론은 특히 오늘날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탁견과 예지가 다시 한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 같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창조인데 사람이 사람을 낳는 것보다 더 위대한 창조가 있겠는가? 인간은 무엇인가를 만들며 살아온 존재들이다. 가장 창조적인 것을 만드는 것이 창조경제라면 사람을 생산(?)하는 것보다 더 창조적인 일은 없다. 사람이 사람을 많이 낳는 것이 진정한 창조경제의 시작이다. 한반도의 7000만 인구는 전 세계 인구 약 70억의 1%에 불과하다. 1%의 인구로 아시아와 세계의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음 세대의 중심국가로 요즘 부상되고 있는 중국, 인도, 브라질같은 나라는 모두 인구가 많은 나라다. 세계의 최강국인 미국은 인구가 2억 8천만명이나 되는 세 번째 인구 강국이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인구 불리기 운동을 할 때다. 한 명 자녀에서 두 명으로 그리고 세 명까지 가는 ‘미래애셋’운동을 실천하여야 한다. 이것은 매우 장기적인 프로젝트이며 또한 사고의 틀을 바꾸어야 되는 패러다임 전환 운동이다. 사람 그 자체가 창조라는 생각을 한다면 창조경제에서는 사람을 많이 낳는 것이 답이다. 미래에는 애를 세명으로!

인구를 계산하는 방법도 다시 생각하여야 한다. stock(저량)에서 flow(유량)로 파악하여야 한다. 즉 단순하게 주민등록상의 인구를 합하는 것이 지역의 인구가 아니라 그 지역으로 유입되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더하는 것이 인구다. 인간은 속성상 유량적이지 저량적이지 않다. 사람은 움직이는 존재다. 외국과 국내에서 관광객이 많이 유입되면 인구가 많은 지역인 것이다. 국내외의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제주도나 강원도는 그런 면에서 사람이 많은 곳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강원도의 예를 들어 보자. 강원도는 사상 처음으로 도세가 비슷한 충청북도의 인구에 추월 당하고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 최하위를 기록하여 내륙 자치단체 중 가장 적은 수의 인구(155만)로 전락하게 되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문제 속에서 강원도는 인구가 최저며 또한 줄어드는 삼중고의 문제에 빠져 있다. 전국에서 수도권으로의 지속적인 인구 유입으로 수도권의 인구 밀도는 연간 약 20명/㎢씩 증가하고 있다. 인구 밀도는 ㎢당 서울(16,586명), 부산(4,497명)순으로 가장 높고 강원(87명)으로 가장 낮다. 서울도 인구과잉으로 빡빡해서 숨막히고, 강원은 인구희박으로 널널하게 허한 상태로 양쪽 다 문제다. 서울은 영양과다의 비만의 문제고 강원은 영양실조의 허약의 문제다. 인구 빠져 나가는 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인구 적은 스위스와 인구 많은 선진국 이태리를 택하라면 필자는 스위스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강원도가 스위스가 되면 되는 것이다. 강원도의 삶의 질을 어떻게 하면 스위스처럼 창조하는가 그것이 관건이다.

단기적 인구늘리기(아기낳기가 아닌) 자체가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동으로 인한 어느 한 지역의 인구 증가는 다른 지역의 인구 감소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적으로 빠져나간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불러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출향민 포함 300만 강원도민이라 하지만 그들이 다 돌아올 리 없고 다 돌아온다고 그들을 받아들일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의 힘이 인구수에 비례한다는 생각은 매우 정치적인 발상이다. 인구와 투표수는 비례하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이 정치적 설득력은 있어도 인구 많은 것 자체가 부와 행복과 삶의 질의 기준이 될 수가 없다. 사람은 살기 좋은 곳과 살고 싶은 곳으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살기 좋은 곳과 살고 싶은 곳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필자의 고향은 서울이지만 춘천에 산 지 근 20년이 되었으니 이제는 춘천사람이다. 나에게는 서울은 살기 좋은 곳이고, 춘천은 살고 싶은 곳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는 살기 좋은 곳보다 살고 싶은 곳에 살기를 원한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이 살기 좋다고 한다. 일자리, 음식, 문화, 예술, 명품 등 서울은 즐기기 좋은 것들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춘천과 강원도는 맑은 공기, 순박한 사람들, 자연, 물, 눈, 나무, 산… 살고 싶게 하는 것들로 가득 차다. 살고 싶은 곳을 계속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들지는 않지만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 난개발과 자연파괴가 강원도에서는 용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살기 좋은 곳을 만들려고 애쓰다가 잘 못하면 살고 싶지 않은 곳으로 전락하는 실수를 하게 될 것이다. 춘천에 나날이 늘어만 가는 계획 없고 디자인 감각 없는 무질서한 고층아파트를 볼 때마다 그러한 불안감이 감돈다. 강원도는 살기 좋은 곳보다는 살고 싶은 곳이 되는 노력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살기 좋은 곳보다 오히려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전국의 지역마다 ‘살고 싶은 지역만들기’를 시작하여야 한다. 이글의 결론은 자명하다.

‘미래애셋’ 그리고 ‘살고 싶은 지역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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