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성호

수필가·전 춘주수필문학회 회장

몇 해 전의 일이다. 한 친구가 담배하나 달라고 한다. 무심코 한가치를 주었다. 입에 물고 불까지 요구했다. 불을 붙여주자 길게 빨아들이는 모습이 오래 참았다가 피우는 것임을 알 듯했다. 몇 모금을 더 빨아 대고는 입을 열었다.

“담배 끊으라고 마누라 극성이 여간 해야지. 그런데 이거 끊기가 이렇게 어렵구먼.”

“끊을 수 있으면 끊어야지, 노력해 보게나. 이거 정말 백해무익한 거 아냐?”

그는 아는 사람만 만나면 담배를 요구했다. 담배를 끊는 게 아니라 동냥담배 꾼이 되고만 것이다. 그것까지는 그래도 좋았는데 그일 때문에 크게 소동이 일어나고 말았다. 어느 날 그 친구와 담배를 나누어 피고 있다가 부인에게 들켜버리고 만 것이다. 잘 끊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부인으로선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결단성이 없느냐.”고 한 마디 하고는 홱 돌아서 가 버렸다. 친구는 계면쩍은 표정을 짓고는 몇 모금을 더 빨고서야 담배를 꺼버렸다. 그날 저녁 부인으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다.

“친구가 어렵게 담배를 끊으려고 하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훼방을 놔요? 그게 어디 친구로서 할 짓인가요?”

격앙된 음성으로 몇 마디를 더 퍼대고는 전화를 탁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이런 기막힌 일이 있나. 담배 대주고 뺨 맞은 꼴이었다. 이 일은 곧 친구간의 불화로 이어졌고 입지가 궁해진 쪽은 담배를 끊겠다던 친구였다. 그 후로 동냥 담배도 피울 수 없이 되었다. 한동안 정말 금연에 성공한 듯 보였으나 얼마 후 다시 애연가로 복귀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피우던 담배를 깨끗이 끊는 사람도 적지 않으나 담배 끊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담배가 백해무익한 것은 사실이다. 애연가들은 스트레스를 푸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애연가들의 변명일 뿐이다. 건강에 안 좋고, 냄새나고, 용돈 축나고, 주위 사람에게 불쾌감 주고, 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거리까지 지저분해지니 담배는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것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국가 재정이 빈곤했던 시절에는 전매사업을 국가에서 운영해서 그 수입으로 재정의 상당 부분을 충당해 왔다. 그때는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말은 듣지 못했고 심지어 담배이름까지도 ‘장수연’이니 ‘풍년초’니 하는 이름을 붙여 은근히 소비를 부추겼다. 국가 경제가 윤택해지면서 담배 갑 표면에 “지나친 흡연은 건강에 해롭습니다.”라는 문구를 작은 글씨로 게시하기 시작하더니 “경고: 건강을 해치는 담배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라고 강도를 높였다. 요즘에는 “담배는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라고 한 단계 더 높아졌다.

금연구간이 점점 확대되어 흡연자들이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흡연 인구를 줄이려면 환영해야할 일이다. 해마다 큰 폭으로 담배 값을 올리면 어떨까? 허나 담배 값 인상을 계기로 금연을 결심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잠시 끊었던 사람이나 줄였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담배 값의 큰 부분이 세금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사실은 담배 값이 오르는 것이 아니고 세금이 오르는 것이다. 담배 값이 됐건 세금이 됐건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기는 매일 반이니 상관없는 것인가.

진정 국민 건강이 염려된다면 담배 공장을 없애버리든가, 흡연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발견 즉시 구속해 버리든가 할 일이지, 속이 뻔한 수법은 이제 그만 했으면 싶다.

3∼4개월 후에는 다시 한 단계 오를 모양이다. 담배 값이 오를 때마다 그러했듯이 “이번에야말로 정말 끊어야지”하고 또 다시 다짐해 본다. 오르기 전 까지는 피우고 오르는 날부터 끊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기 전에 사재기할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 작심3일이 아니라 아예 끊을 생각이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나는 이러면서 나이 어린 청소년들이 담배 피우는 꼴은 왜 눈뜨고 못 보는 건가. 담배 값 올리는 게 불만이면서도 담배 피우는 아이들을 볼 때는 담배 값을 더 많이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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