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원

서울대 대학행정교육원장·전 특허청장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정부의 내년도 예산 시즌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내년도 정부 예산은 10월 2일 국회에 정부안을 제출함으로써 편성작업이 끝나게 된다. 정부 예산 편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왜냐하면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지자체가 계획하고 있는 사업들의 추진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자체 주민들의 삶의 질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예산 시즌에는 언론에서도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예산확보를 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하는 사례를 자주 보도하곤 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자체장들이 기획재정부 예산실에 가서 사업설명을 위해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것은 예사이고, 지역 국회의원은 물론 중앙에 있는 지역 출신 공무원들을 총동원해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따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영웅담처럼 기사화하곤 한다. 국가재정이 풍부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예산 편성과정은 그야말로 한 푼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측과 한 푼 이라도 더 삭감해야만 하는 재정 당국의 치열한 논리 싸움일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에서 오래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필자는 여름철이면 강원도 파견관으로 근무한다는 자세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강원도 출신으로서 예산실에 근무하는 사람이 몇 명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외국에 나가면 자연히 애국자가 되듯이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근무하게 되면 자연히 애향인(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면서도 출신 지역을 위해 숨은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은 지방출신 공직자들의 소명(所命)이 아니겠는가? 이는 마치 필자가 미국 뉴욕의 UN 본부에 근무할 때 미국 국적의 윗사람으로부터 ‘한국을 위해 일하지 말고 세계를 위해 일하라’고 자주 핀잔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예산은 논리와 끈기를 갖추고 있을 때에만 많은 확보가 가능하다. 필자가 강원도 관련 사업이 잘 추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발한 논리는 많지만 이를 한두가지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전국의 각 지방 사무소에 자동차 구입예산을 편성할 때 이야기이다. 강릉은 바닷가니까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에 자동차 부식이 빨리 진행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 결과, 강릉사무소에는 여타 지역보다 20% 정도의 자동차 구입예산을 더 많이 반영할 수 있었다. 다른 사례는 춘천~화천 간 국도 4차선 확장 사업의 타당성 조사에 관한 것이다. 지금은 2차선인 도로의 교통량을 조사해보니 자동차 통행량이 적어서 4차선 확장이 불필요하다는 결론을 내기 직전이었다. 필자는 춘천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춘천~화천 간 2차선 국도에 군수송 훈련차량이 수시로 다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군부대 훈련차량은 10대, 20대로 줄지어 연습하기 때문에 단체로 길게 움직이는 군 훈련 차량을 추월하기 위해서는 일반 차량 통행량과 비교해서 5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고, 따라서 통행량을 훈련차량 수의 5배 이상 계산해야 된다고 논리를 폈다. 여기에다 군수송대의 훈련계획을 추가로 받아서 교통량 수요에 반영한 결과, 4차선 도로 확장의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예산 확보는 논리의 싸움이며, 논리에 이기면 원하는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내년도 예산 편성이 마무리되고 있는 요즈음 과연 강원도와 각 지자체에서는 원하는 예산을 얼마나 확보했는지 궁금해진다. 지역발전과 지역주민의 삶에 필수적인 예산확보에 도와 지자체 공무원들이 지역주민을 위해 얼마나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고, 이를 관철했는지 모두가 눈여겨 볼 때이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