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극한의 경쟁시대에 살면서 스펙을 다른 사람보다 하나라도 더 많이 늘려야만 한다는 집단 최면에 걸린 우리 젊은이들에게 행복(幸福)이란 그저 아득히 먼 미래의 일로 여겨질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행복일까’에 관해 생각해 보라고 권하는 것 자체가 사치로 비쳐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청춘이라는 인생의 황금기를 눈물로만 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 필자는 이번 기회에 주변의 작은 행복일지라도 일상 속에서 가까이 하고 함께 나누는 행복연습을 지금 당장에 시작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행복도 그 느낌을 아는 사람만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맘껏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부터 행복찾기를 시작해 볼까. 우선 행복의 모양과 색깔을 알아야 할 것이다. 행복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러나 이렇게 출발하는 우리들의 탐색은 그 시작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행복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모습으로는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얼굴이 서로 달라서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을 결코 만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그 무엇이 내게도 역시 똑 같은 크기와 색깔과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행복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해 주고 싶다.

왜 남부러운 스펙을 갖추고 있으며 남보다 많은 행운을 누리는 젊은이들조차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걸까. 우리 주변에는 객관적으로는 결코 불행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불행하다고 느끼는 청춘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과연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걸까.

스펙 쌓기라는 세상의 왜곡된 기준에 몸과 마음을 저당 잡힌 채 팍팍한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행복이란 오직 미래에 메시아와 함께 올 것이라고 믿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 있다. 더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더 큰 기업에 입사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더’라는 욕심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아서 결코 그 끝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무한경쟁의 쳇바퀴 속에 던져진 자신을 거울에서라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행운이 아닐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중에는 단언컨대 행복도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에너지가 일부 편향된 가치에 함몰되어가는 현실은 결코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다.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이 던진 스펙쌓기라는 미끼를 마냥 쫓아 다니면서 우왕좌왕하기보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를 찾아 자신만의 색깔로 세상을 새롭게 열어가는 게 중요하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하더라도 이러한 가치의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가 이 세상을 다녀간 이후로는 적어도, 세상의 입맛이 ‘스펙 좋은 사람’에서 ‘느낌이 확 오는 사람’으로 확연히 바뀌고 있다는 것도 직시해야 한다. 참된 사회라면 직장을 구하는 젊은이가 갖고 있는 스펙보다는 그 사람의 행복찾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함께 행복을 가꾸어갈 열정이 있는지를 궁금해 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젊은이들이 행복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길 바란다.

작은 행복을 외면하고 오로지 최고의 행복만을 향해 진군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죽음을 맞는 순간에야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오늘은 그저 고난과 인내의 가시밭길이거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제물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에게 오늘이란, 내일의 행복 퍼즐을 맞추어 가는 시간이며 자신은 물론 가족과 이웃을 위해 자신만의 색깔로 열정을 쏟는 공동체의 행복 완성에 딱 들어맞는 한 조각이어야 한다. 비록 같은 공간에 있을지라도 제 각기 다른 삶을 사는 게 인생이다. 서투른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고 눈치 보는 삶은 개나 줘버리는 것에서 행복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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