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영

영서본부 취재 부국장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민족 최대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25일부터 30일까지 예정됐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돌연 연기한다는 청천벽력같은 발표를 해 명절을 즐기며 이산가족 상봉에 가슴 설레던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과 함께 가슴에 엄청난 대못을 박는 행동을 저질렀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 모두가 이산가족 상봉을 인도적이기보다 정치적이고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북측의 태도에 허탈감과 함께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특히 고향이 수복지구로 수많은 이산가족을 이웃으로 함께 살았던 기자로서는 북측의 이 같은 태도가 더욱 밉고 인간적 배신감마저 들게 한다. 어려서부터 투박하고 정겨운 함경도 사투리를 쓰며 혈육에 대한 진한 그리움으로 힘들어 하던 동무들의 모습들이 눈에 선할 뿐 아니라 이제는 세월이 흘러 평생 고향 한번 가보고 헤어졌던 혈육을 만나기만 학수고대하다가 세상을 뜬 수많은 이웃 어른들의 모습도 생생하다.

이처럼 혈육들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불행한 민족이 지구상에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통일이 되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되겠지만 현재 정세를 볼때 통일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고 이산가족들 역시 세월 앞에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다 세상을 뜰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특히 개성공단 정상화와 이산가족 상봉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에 희망을 걸었던 고성군민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으로 생이별한 이산가족이 1000만명이다. 정부는 이같은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지난 1995년부터 2010년까지 모두 18차례에 걸쳐 상봉행사를 가졌지만 혈육을 만나는 행운을 얻은 가족은 극히 일부에 그치고 있으며 대부분의 이산가족들은 아직까지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남측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2만8842명이며 이중 40%가 넘는 신청자가 사망했으며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들도 대부분 80세 이상 고령자들이어서 이산가족 상봉이 조속히 재개되지 못한다면 이들 대부분이 가슴에 한을 안고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현 정부 역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얼마전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이 흥정대상이 아니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을 지키겠다고 밝혀 남북관계 정상화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북한은 지난 5월 최룡해 특사가 중국을 방문한 이후 연일 대화와 평화 공세를 펼쳐 왔으며 개성공단 정상화 등 남북관계가 모처럼 만에 해빙기를 맞는 시점에서 갑자기 이산가족 상봉을 일방적으로 연기한 속내가 궁금하기만 하다.

정치학자들은 최근 남북관계를 원칙을 고수하는 박근혜 정부가 주도하고 있으며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당국 실무회담 역시 북한의 의지와 관계없이 예정보다 일주일 연기하는 등 남측의 원칙론에 북한이 끌려가고 있다는 불만의 표출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이번 이산가족 상봉 연기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산가족 상봉을 일방적으로 연기한 북한의 속내가 무엇이든 간에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인도적 문제를 정치상황과 연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국제적으로도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무엇보다 이산가족 대부분이 고령으로 수명을 다해가는 점을 고려할 때 이산가족들을 인질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북한의 의도는 천륜을 어기고 반 인도주의적 행태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우리 정부 역시 원칙을 고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래주는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해 하루빨리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한가위 명절날 북녘을 보며 고향과 잃어버린 가족을 한없이 그리워했을 실향민들의 가슴 저민 마음이 상봉으로 어느 정도 힐링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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