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정록

경제부장

최근 있었던 일이다. 일이 있어 찾아온 손님과 차 한 잔 하기 위해 커피전문점을 찾았으나 제법 큰 시내인데도 차 한 잔 할 곳이 없었다. 오전 11시가 넘었는데도 모두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가려면 차를 몰아 유명 브랜드 커피전문점으로 가야했다.

춘천에 놀러온 한 여행객은 “점심식사하고 당구장이나 가자고 해서 시내에 있는 몇 곳을 들렀는데 문 연 곳이 없더라”라고 딱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춘천 번화가의 한 모퉁이에 문을 연 커피전문점 사장은 “오후 세시가 넘으면 행인도 줄고 가게로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며 “여섯시만 넘으면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한 시간도 되지 않은 거리에서 느끼는 외지인들의 갑갑함은 춘천은 물론 강원도 경제의 한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거기에 따라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어치피 강원도도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움직이는 것일테니 말이다. 그러나 강원도식 자본주의는 경쟁보다는 온정, 혁신보다는 관행, 속도보다는 느긋함에 더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서비스를 공급하는 쪽에서 소비자에게 기준을 맞추라고 윽박지르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지역 내부에서 서로 지켜온 방식들을 손대려고 하지 말고 빨리 익숙해지는 것이 편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우리끼리식 자본주의는 강원도의 현재를 규정하고 있다. 경쟁이 가장 치열한 유통 쪽을 보자. 소매업의 수레바퀴론을 제시한 하버드대학의 말콤 맥나이어는 혁신적인 신규진입자들이 물건을 싸게 들어와서 시장을 장악하면 그것을 근거로 고급화 전략을 택하고 그 과정에서 또다른 저가업자들이 시장에 등장하는 유통사이클이 반복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패턴의 정형화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의 움직임은 혁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은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원도에서 그 혁신은 누가 제공했는가. 그것은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물론이고 농수산물도매시장까지 지역시장은 외부의 충격에 그대로 노출됐다. 대형마트들은 저가경쟁을 촉발시켰지만 그 결과는 쇼핑뿐만이 아니라 생활문화 전반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동네에서 편히 보는 커피전문점을 보더라도 그렇다. 이미 커피 시장은 포화상태다. 커피전문점과 함께 베이커리와 햄버거 전문점까지 커피를 취급하면서 커피매장은 전국적으로 3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과포화상태인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커피 대신 문화공간을 제공하고 복합푸드서비스매장으로까지 변신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지역에서 정신차리고 스스로 변하기도 전에 또다른 변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지역의 변화가 외부의 충격에 의해 시작됐다는 것은 그 지역으로 봐서는 정말 딱한 일이다. 외부충격에 의한 개방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은 진정 변화와 혁신의 사각지대인가. 그것은 우리가 느끼게 될 절박함과 연결돼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편하게 누려왔던 대로 또다시 앞으로 나아간다면 변화의 주체는 여전히 외부의 몫이다.

말콤 맥나이어는 혁신을 강조하며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서자처럼 평판이 나쁘고 업신여김을 당한다. 그럴수록 고개를 빳빳이 들어야한다, 그대에게 손가락질하는 것은 두려워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강원도가 혹시 그동안 변화와 혁신에 대해 손가락질해 왔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 느끼는 두려움의 발로일 수 있다. 또한 그만큼 우리가 나아갈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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