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나이가 들면서 병원비에 손주용돈까지 돈 쓸 곳은 늘어만 간다. 그러나 돈 나올 곳은 마땅치 않다. 젊은 시절 안 먹고, 안 쓰면서 악착같이 식구들 뒷바라지를 했다. 하지만 아등바등 제 앞가림하느라 여념이 없는 자녀들에게 용돈이라도 기대했다가는 요즘은 ‘간 큰 노인’이라고 소리 듣는다.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은퇴 시기는 빨라져 후반전 추가시간이 늘어도 너무 많이 늘었다. 마지막 남은 건 평생 일군 집 한 채가 전부이다. 그런데 부동산 불패신화마저 옛날얘기가 되어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네 어르신 대부분의 상황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계속 오르는 집값을 바라보며 자녀가 노부모를 부양하고 주택상속을 통해 자녀의 재산을 키워주는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2007년 정부가 도입한 주택연금 제도는 이에 대한 하나의 유용한 대안이 될 수가 있다.

주택연금은 만 60세 이상 어르신이 소유주택을 담보로 매월 평생 동안 연금방식으로 노후생활자금을 지급받는 제도이다. 다만, 기존 주택담보대출상환 후 연금을 받고자 하면 50세 이상만 되어도 가능하다. 올해 상반기까지 6년간 누적 가입건수는 약 1만 5000건으로 같은 기간 미국 공적보증 역모기지의 1만1000건을 넘어서고 있다. 2010년 2016명, 2011년 2936명,2012년 5013명으로 가입자수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가입자수가 대폭 증가하는 것은 무엇보다 주택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테크 수단으로서 주택은 그 매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땅한 노후대책이 없는 보통의 어르신들이 소유주택을 ‘상속’ 대신 ‘이용’하려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실시한 ‘2013년도 주택연금 수요실태조사’에 따르면 주택을 상속하지 않겠다고 응답한 노년층의 비율이 25.7%로 2009년 12.7%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 실제 주택연금 이용자들은 자녀의 경제적 도움을 받고 싶지 않고(87.0%), 노후생활자금을 마련할 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85.7%)에 주택연금을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저성장 추세가 고착화됨에 따라 ‘그래도 집 한 채는 물려줘야지’라는 전통적인 상속관념은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오르지 않는 집을 수십 년 후에 상속받을 바에야 부모가 노후에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부양부담을 덜어주는 편이 낫다는 자녀세대의 인식 변화도 널리 감지되고 있다.

또한 사후에 주택을 처분하여 연금수령액이 주택가치보다 적으면 남는 부분을 자녀에게 상속하고, 반대의 경우 모자란 부분은 정부예산으로 보전하는 것도 주택연금의 장점 중의 하나다. 오래 살면서 주택가치 이상의 연금을 받으면 이익이 되며, 그 차액은 국가가 예산을 투입하여 메꾸어 주는 것이다. 과거 시중은행에서 주택연금과 유사한 상품을 출시한 적이 있지만 수익을 중시하는 민간 금융기관은 이러한 장수 리스크를 부담할 수 없었다. 이를 활용한 안정적 노후설계에는 한계가 노출되어 이 상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주택연금 가입은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일단 가입 후에는 즐겁게 오래 사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된다.

내 집 마련과 자녀양육에 허덕이는 30세 자녀와 이제 막 은퇴한 60세 부모가 같이 늙고 있다. 앞으로 30년이 더 남았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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