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광균은 시 ‘목상(木像)’에서 ‘집에는 노처(老妻)가 있다 /노처와 나는 마주앉아 할 말이 없다/.(중략)/세월이 지나면서/우리 둘은 목상이 되어가나 보다’라고 노부부를 노래한다. 시인 도종환도 ‘가구’라는 시에서 부부관계를 비슷하게 묘사한다.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 놓여 있다. 장롱이 그랬듯이/ (중략)/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부부의 전형적인 모습을, 목상과 장롱처럼 든든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대화 없이 재미없게 사는 것으로 표현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그저 그러려니 살아가는 것이 부부인 것에 우리 대부분이 익숙한 까닭이다.

지난달 인구보건복지협회가 결혼생활만족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여성은 19%만 ‘다시 태어나도 지금 남편과 결혼하겠다’고 응답했다. 남성의 45%가 지금 부인과 결혼하겠다는 것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이다. 헤어진 부부 10쌍 중 8쌍은 여성이 남성에게 먼저 이혼이나 별거를 제안했다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이 수치들만 보고 말한다면 부부관계의 유지나 존속 결정권에서는 여성이 ‘갑’이다. 남성 여성 고유 성역할 파괴 등 다양한 사회 변화가 자연스럽게 관계주도권을 여성의 몫으로 이양시켰다는 말이다.

결혼 20년 이상인 황혼 이혼이 26.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엊그제 사법연감이 발표했다. 황혼이혼의 주도도 여성이다. 아내 몫 재산 분할도 법적으로 보장받고 이혼을 인지하는 시선도 관대해졌다. 평생 가족 위해 봉사하다 이제 나를 위한 여유를 찾았는데 남편이 걸림돌인 것이 싫다. 황혼이혼이 느는 이유는 남편은 더 이상 인내와 관용을 베풀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는 아내들의 생각이 견고해진 때문이다.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박영희 시인의 시 ‘접기로 한다’의 한 구절이다. 늘 접고 접어야 하는 것이 우리네 부부들의 삶인데 그게 흔들거린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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