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전체의 산, 나무가 빨강 주황 노랑 형형색색으로 감탄사를 절로 나오게 한다. 어디를 가도 한 폭의 수채화 그림이 그려진 듯 절경이니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런 색색 나뭇잎들 수명이 너무나 잠깐이라는 사실이다. 하긴 일년내내 이런 경치이면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감동도 지금처럼은 아닐 것이다.

자태를 뽐내던 빨간 잎도 샛노란 은행잎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화려했던 경치와 그 경치의 사그라짐을 고스란히 음미하는 시간은 저마다 각자의 느낌으로 한해를 돌아보게 한다. 좋았던 일이 많았던 사람들은 화려한 색깔에 감정을 이입시키며 감사를 노래할 것이고 암울한 일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은 스산한 나무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정을 침잠시킬 것이다. 그래도 시인 도종환은 잎이 다 떨어져버린 나무들은 오히려 버릴 것 버릴 줄 아는 지혜로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시 ‘단풍드는 날’에서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 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이라고 표현한다. 단풍을 묘사한 시의 한복판에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뜻의 ‘방하착’이 등장한 것이 신선한 충격이다. 시인은 나뭇잎이 지고 떨어지는 것은 쓸쓸함이 아니고 성숙한 단계로의 발돋움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인디언들은 계절변화에 따른 사람들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여 달(month)의 이름을 지었다. 예를 들어 인디언의 ‘12월’은 ‘침묵하는 달 또는 무소유하는 달’이고 11월은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다. 못 이룬 것에 대한 회한이 잦아지는 12월에 비해 11월은 아직도 가능성과 기회가 있는 달임을 강조한 명명이다. 한해 가기 전 만감이 얽힌 자기성찰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영욕에 충만한 사람들에게는 내려놓는 겸손함을, 아픔과 후회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회복의 시간을. 각 개인에 적합한 치유연습이 11월이 주는 선물이다. 화려함과 사라짐의 극명한 대조가 우리의 내려놓는 연습에 단초를 제공한다 생각하면 너무 오버일까?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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