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진곤

도농업기술원장

우리나라는 예부터 농업국이어서 농사를 중시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왕이 농사를 권장하던 권농(勸農)의식의 유래는 고구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동명왕편(東明王篇)’에 의하면 “고구려 시조 동명왕이 현재 만주인 동부여에서 압록강을 건너와 고구려를 건국할 때 오곡 종자를 가지고 와서 권농에 진력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후에도 신라의 선농(先農) 행사, 조선의 신농씨(神農氏) 행사, 일제 강점기에 농민 행사 등 권농 관련 기록은 계속해서 발견된다. 그 후 1973년에 어민의 날, 권농의 날 그리고 목초의 날을 권농의 날로 통합한 후 1996년 권농의 날을 폐지했다. 1990년 이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인의 사기를 진작하고 발전하는 농업기술을 전파하기 위해 1996년 11월 11일을 농업인의 날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오늘이 18번째 맞이하는 농업인의 날이다.

농업인의 날의 시초가 강원도가 된 것은 “1964년 전국 최초로 강원도 원주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지던 농민행사를 국가에 건의하여 오늘날의 농업인의 날이 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농업인의 날이 11월 11일인 이유는 농민은 흙에서 태어나서 흙을 벗 삼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흙(土)자가 겹친 ‘土月 土日’을 상정했고 이를 아라비아 숫자로 풀어쓰면 11월 11일이 된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또 이 시기는 농업인들이 한 해 농사를 마치고 쉬며 즐길 수 있는 좋은 시기라는 점도 고려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농업인의 날이 농업의 위상을 지키고 국민들에게 농업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고자 하는 의도와 함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반갑고 즐거워야 할 날에 농업인들의 맘은 그다지 즐겁지 않은 것 같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촌은 날로 피폐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 농업 인구가 급격히 감소해 농촌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 농업과 농업인들은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국제사회의 농업통상에 대한 압력이 더해지면서 농산물도 더 이상 비(非)교역 대상 품목으로 머물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농업이 위축되는 것을 그대로 둘 수만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농촌과 농업인은 경제적인 논리로만 재단할 수 없는 역사성과 문화적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농업인이 생산한 농산물로 하루 세끼를 먹으면서도 농업과 농업인에게 무관심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2012년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5.3%이며 곡물자급률도 역대 최저치인 23.6%를 기록했다. 이는 우리 농산물의 국제경쟁력이 그만큼 취약하고 식량위기 발생시 우리가 받을 영향이 커졌음을 보여주는 수치라 할 것이다. 이렇듯 식량주권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식량안보를 책임지는 농업인을 등한시 하는 것은 농촌뿐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에 많은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갈수록 경제 전체에서 우리 농업이 차지하는 위상이 축소되고 있지만 식량안보와 환경보전, 사회·문화적 기능 등 다원적 관점에서의 농업의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농업인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우리농산물 소비촉진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생산지보다 소비지에서 턱없이 비싸게 팔리는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과 신품종개발을 포함한 다양한 농업지원정책 등 산적해 있는 과제가 많다. 오늘 제18회 농업인의 날을 맞이해 원조 강원도가 국민들의 제2인생 행복장소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건전한 농촌건설은 우리 모두의 몫이며 의무이다.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농촌을 지키고 전 국민에게 알파(α)되는 상생방안을 모색해 미래 농촌의 청사진을 그리며 ‘모두가 행복한 농촌 건설’이라는 희망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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