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곤

도소방본부장

1969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슬램가 골목에 차량 두 대를 세워두고, 한 대의 차량은 보닛을 열어두고 다른 한 대의 차량은 보닛을 열어둔 상태에서 앞 유리창 일부를 조금 깨어뒀다. 일주일 뒤 보닛만 열어둔 차량은 큰 변화가 없었는데, 놀랍게도 유리창이 깨어진 차량은 크게 파손돼 폐차 일보직전의 차량이 됐다는 것이다.

훗날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의 바탕이 된 실험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은 주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결론인데 결국 사소함의 문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사소한 일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지난 8월 28일 오전 12시 27분쯤 춘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원인미상의 화재가 발생해 주차중인 차량 6대 중 3대가 전소되고, 3대는 반소되는 등 3600여만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일정 면적 이상의 지하주차장에는 화재발생시 초기에 자동으로 진압하는 스프링클러설비가 설치돼 있다. 그런데 이번 화재에는 작동하지 않았다. 관리소홀로 인해 필요시 작동하지 못해 피해를 키운 것이다. 한번 관리를 소홀히 하기 시작하면 소방시설의 특성상 사고발생 전에는 그 중요성을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일상생활에 쉽게 접하는 전기시설, 냉·난방시설, 가스시설 등은 생활속 편리함을 가져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고장이 나면 즉시 불편을 느끼지만, 소방시설은 고장이 나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일부 사람은 불필요한 설비, 또는 관리상 불편을 주는 설비로 인식하기도 한다.

사회가 변화되고 국가가 선진화 되는 시점에서 우리 국민들도 안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소방시설은 편의시설과 그 목적부터 다르다. 일상생활의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설비는 아니지만, 화재발생시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는 없어서는 안 될 마지막 담보이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어린이 불장난으로 고무보트에 화재가 발생하였으나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여 조기 진압된 경우도 있고, 새벽에 5층 건물 여관에서 1층 주인부부가 가정문제로 다투다 남편이 자살방화를 시도해 화재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자동화재탐지설비가 작동, 2층 투숙객이 이를 듣고 전파하여 수십명이 대피하여 인명피해를 막은 경우도 있다.

이처럼 소방시설은 평소 생활에 편리함을 주지 못하지만 화재발생시 그 가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지난해부터 소방검사제도가 특별조사체제로 전환됐다. 과거 소방공무원들이 대상처를 일일이 방문해 소방시설을 검사하고 행정조치 하던 것을 이제는 필요시 특별조사를 실시한다. 그리고 위반사항은 관련법령에 의거 강력히 조치하고 해당대상에 대하여는 지속적으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제도 전환의 배경에는 소방대상물 대비 소방공무원 인력부족도 있지만 관(官)중심의 규제행정에서 벗어나 민간 중심의 자율 점검체제로 전환해, 사회 취약대상을 중심으로 선택적 집중조사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또한 올해 도소방본부에서는 주택화재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도민행복 안전정책의 일환으로 도비 2억원을 들여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에 대해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보급하고, 화재 없는 안전한 마을을 조성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중이다. 중국 전국시대 한(韓)나라 한비(韓非)의 저서 한비자(韓非子)에는 千丈之堤 以婁蟻之穴潰 百尺之室 以突隙之烟焚(천장지제 이루의지혈궤 백척지실 이돌극지연분)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천 길 높은 둑은 개미나 땅강아지의 구멍으로 인해 무너지고, 백 척 높이의 으리으리한 집은 아궁이 틈에서 나온 조그만 불씨 때문에 타버린다’는 의미다.

천길 둑이 무너지고, 백 척 높이의 건물이 무너지는 것도 결국 사소한 것 때문에 일어나듯 대형화재도 마찬가지로 작은 것에서 시작되어 큰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조그만 것을 놓치지 않아야 큰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하루하루 내 주변에 안전사고 요인이 없는지 관심을 가지고 살핀다면 자신을 비롯한 내 이웃의 삶까지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