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선주

국립춘천박물관장·문학박사

대한민국 남성들은 누구나 한번 ‘군인’이 된다. 그것이 일반 병사이든, 부사관, 장교이든 간에, 복무기간이 짧든 길든 간에 모두가 한번은 병역의 의무를 부여받아 인생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한 시기를 군에서 보내게 된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군대생활에서의 갖가지 추억과 무용담을 술자리 단골 메뉴로 올려놓곤 한다. 그 이야기의 공간배경 중 대표적인 곳이 강원도의 전방 근무지다. 우리나라의 뭇 남성들이 젊음의 한 때를 보냈던 장소로 기억하는 강원도는 과연 어떤 이미지일까? 강원도의 이미지는 척박하고 추운 전방 이미지로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기왕의 청춘이 군 복무 시절을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국립춘천박물관은 이러한 뜻을 담아 군장병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박물관 병영문화학교’이다. 박물관 전시 관람을 통해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교양을 넓힐 뿐 아니라, 전쟁의 포화 속에서 군인의 힘으로 지켜낸 문화재들을 소개하며 군인으로서의 책무와 보람을 북돋우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 밖에도 통일신라 범종의 당좌 문양을 관찰하고 응용하여 세면도구를 넣을 수 있는 주머니를 만들거나 비누를 만들어 가는 등 다양한 연계 체험 활동도 진행된다.

학창시절 숙제를 풀기 위해서 또는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통해 견학했던 정도의 기억을 가진 많은 젊은이들에게 박물관은 고리타분한 ‘적막’의 장소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장성한 군인이 되어 박물관을 다시 찾은 젊은이들은 병영 이외의 새로운 장소로 나들이하게 됨으로써 일차적인 ‘힐링’을 맛보고, 평소 어렵기만 했던 선후임병과 한결 부드러워진 인사를 건네 볼 수 있을 것이며, 동기와의 소중하고 재미있는 ‘추억 만들기’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한편, 국립춘천박물관은 군장병을 직접 찾아가는 프로그램도 병행 운영하고 있다. 군입대를 위해 매주 화요일 춘천을 찾는 102보충대 입영장병과 가족친지들은 무려 3~4천명에 이른다.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이별하고 군에 입대하는 장병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가슴 뭉클하다. 눈물로 이별하는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많은 사연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 박물관은 ‘그리움을 담은 시전지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시전지’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아끼는 이와 마음을 담은 글을 써서 주고받았던 일종의 편지지이다. 매주 화요일 부모와 친구, 연인은 입영장병에게 보내는 편지 쓰기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시전지 목판을 이용하여 인쇄체험을 하고, 정성들여 꾸민 편지지에 소중한 마음을 담는 것이다. 이 편지는 부대배치가 결정되는 목요일 밤에 장병의 손에 건네진다. 부모님과 친구들의 감동 사연들은 군 생활 내내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병영수첩 속에, 관물대 위에, 군복 속주머니 안에 고이고이 간직하게 될 것이다.

박물관의 기본적인 역할은 유물을 보존하고 연구하여 전시와 교육을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폭넓게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박물관의 업무 가운데서도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박물관은 군 장병들이 많은 강원지역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군 장병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민해 왔다. 올해는 처음으로 육군본부와 함께하는 ‘대한민국 호국미술대전’을 지난 4일부터 개최하고 있다.

작년까지 서울 전쟁기념관에서만 개최했던 전시를 올해에는 장병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 박물관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육군본부와 육군 제2군단, 국립춘천박물관의 공동 노력이 모여 열리게 된 이 전시에는 호국을 주제로 한 서예, 회화, 조각품 등 공모전의 수상작품들이다. 예술을 통한 국민과 육군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관람객들에게는 우리나라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장병들에게는 문화의 향기가 담긴 박물관을 만날 수 있는 남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최근 융복합이라는 말이 화두로서 주목되고 있다. 문화에 있어서도 전통문화와 병영문화를 잘 융복합시켜 군장병들이 복무 중에 교양을 쌓음과 동시에 건전하고 명랑하게 군 생활을 마칠 수 있도록 우리 박물관은 더욱 양질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이 튼튼한 국방 속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더욱 꽃 피울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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