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희

도교육감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 ‘황홀한 빛깔’을 보여주던 나뭇잎들도 대부분 떨어지고 어느새 무서리가 내리는 때가 되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쌀쌀해지는 바람과 깊어가는 파란 하늘을 보며 시간의 힘을 느끼면서 그간의 성과들을 정리하느라 바쁠 선생님들을 생각합니다. 더불어 선생님과 함께 눈부신 성장을 일구어온 학생과 뒷바라지 하신 부모님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도종환 ‘단풍드는 날’ 전문)



방하착(放下着)!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말입니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을 아낌없이 버릴 때라야 비로소 생의 절정에 선다고 이 시는 말합니다. 나뭇잎이 지고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단순히 쓸쓸해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진정한 성숙의 의미를 발견한 시인의 눈이 놀랍습니다.

지난 7일, ‘온 국민의 관심사이자 국가대사’인 수능이 끝났습니다. 가슴 졸였던 수험생과 부모님, 그리고 선생님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큰일 끝났기에 마음은 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12년 배움을 하루 시험으로 훅 써버리는 듯한 허탈감도 함께 밀려왔을 겁니다. 조만간, 수능성적표가 손 안에 들어오겠지요. 성적표를 받은 후 일희일비할 수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힘들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부모님이나 선생님, 주변의 어른만큼 인생의 행로를 걸어가다 보면 수많은 꼭지들 중 하나라는 사실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들 가는 대로’보다는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려는 마음으로, 또는 대한민국의 기술을 이끌어 갈 장인(匠人)으로 우뚝 서기 위해 취업을 선택한 학생도 있을 겁니다.

사실, 대학이든 취업이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설계하고 실천하느냐라는 것입니다.

어떤 밑그림을 그리고, 어떤 색깔을 칠할까를 골똘히 고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회의 역사처럼 개인사도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걸어온 시간들이 쌓여서 굳어집니다. ‘어제의 나’가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나’가 ‘내일의 나’를 밀고 나갑니다. ‘내일’이라는 말 속에 ‘더 나은’이라는 의미가 담기기를 소망한다면, 지금 여러분이 걷고 있는 발자국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더 나은 삶’은 지금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는 수많은 발자국들이 모여 결정된다는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첫 추위가 가장 춥듯이 어른이 되어가는 길에도 첫 추위가 다가올 겁니다. 첫 추위를 잘 넘기면 동지섣달 동장군도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 아랫목의 따뜻함이 그리운 것은 들판의 찬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던 일들을 조심스레 꺼내 실천해 보길 바랍니다. 산꼭대기에 올라본 사람만이 산을 내려올 수 있는 것처럼 하고자 했던 일을 하지 못하면 늘 아쉬움이 남기 마련입니다. 훗날 자신이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금 해야 할 일, 그리고 무엇을 잘 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해의 마지막 계절인 겨울과 한 해의 끝 달인 12월을 앞두고 쓸쓸함에 젖기 쉬운 이때, 끝은 동시에 새로운 시작임을 잊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떨어지는 나뭇잎은 아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잎이 되고 꽃이 되고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 있으면 교과서 밖 세상으로 나서는 여러분의 발걸음을 힘차게 응원합니다.

굳게 땅을 딛고 마음껏 달려보길 바랍니다. 바람이 없어도 좋습니다. 우리가 바람이 되어 달려가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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