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장진

수필가

지난 17일은 강원문단의 또순이 소산(이명순 수필가)이 하늘나라로 날아간 지 벌써 3년이 되는 날이다. 아직도 어디선지 종종걸음을 칠 것만 같다. 손에 물마를 날 없이 오늘도 투박한 손이 바삐 움직일 것만 같다. 함께 글을 쓰던 이 여섯이서 영서로를 달린다. 금병산이 노루잔등같이 누런 옷으로 갈아입었다.

춘천시 동산면 종자리로는 꼬불꼬불 양의 창자 같다. 맨 꼭대기라 그런지 찬바람이 세차다. 덜덜 떨린다. 복더위를 생각해서 이리 높은 바람 골에 자리를 잡았을까, 3겹4겹 물결치는 산등성이가 관망하기 좋아서일까, 고인의 고운마음과는 영 딴 판이다. 시어머니와 단둘이 네모 돌집에서 깊은 잠에 빠졌으니 바깥세상이 아무리 추운들 알 턱이 없지. 무덤이 두 줄로 가지런한데, 다들 널따란 배에는 큼지막한 문패를 안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이 무덤만 반반하다. 돌아 갈 때, 아무도 찾지 못하게 유언이라도 했나? 묘 앞에서 봉분 왼쪽 아래쪽을 살펴봐야 숨어 있는 ‘C5’란 글씨를 볼 수 있다. 3단지 1열 C5이다. 산소 양쪽 꽃병 속에 조화가 가득한 걸 보니 우리 말고 다른 이들도 왔다 간 모양이다. 자녀들과 사위들일까?

“제주는 범려께서 하시지요. 제수와 꽃까지 준비해 왔으니….”

제수를 진설하고, 춘천막걸리를 큰 종이 잔에 가득 따른다. “생전엔 맥주 한 잔도 쩔쩔맸는데, 막걸리 3잔씩이나 아무 말 않고 잘도 받아 마십니다. 사람은 죽는 순간, 술꾼이 되지요. 적어도 석잔 반씩부터.” 종손인 학영당의 가르침이다. “자아, 재배 합시다.” 절 올리는 여섯 다 돌집 주인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소산은 복도 많다. 3년씩이나 남정네들이 찾아와 예를 올려주니, 나도 나중에 여러분한테서 이런 대접을 받을까요?” 호수지기께서 이리저리 둘러본다. “아니 늙은이들 앞에서 무슨 말씀을 그리 하세요. 우리들보다 젊으시면서, 먼저 돌아가시겠다는 게요?” 청산유수가 말문이 막혔다. “하 하 하!” “자, 한 잔들 합시다.” 호수지기, 난곡, 봉산, 학영당께서 손사래 치는 바람에 범려와 둘이서 연거푸 들이켜 커다란 술병에 바닥을 낸다. 소산이 아까워 한 풀이 한 걸까? 이래저래 애꿎은 위만 대낮부터 죽을 고생을 한다.

온통 잿빛이던 하늘 두 구멍으로 영롱한 햇빛무더기가 비단결처럼 팽팽하게 내리 펼쳐진다. 세찬 바람도 꼬리를 거둔다. 까마귀 한 쌍이 날아와 ‘까악 까악’ 장송곡을 부른다. 소산의 3주기를 기리는 조짐일까? 평생 헌신봉사 해 온 소산을 하느님께서도 너무 일찍 데려가 애석한가 보다. 눈물이 눈이 되어 휘날린다. 소산의 영구주택과 함께 사진을 담는다. 다들 환한 얼굴인데, 소산만 숨어 울 테지. 이제 한 많은 세상사 다 잊고, 부디 편히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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