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정치인들이 민심을 얻고 싶으면 고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기억을 대한민국 국민은 다 공유하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종교를 떠나서 추기경이 말한 것에는 무한신뢰를 보내며 위로를 받았던 추억이 있다.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 국민들 모두는 국가의 어른이 돌아가셨다고 슬퍼했다. 소위 한 집안의 어른이 그 집안의 지주인 것처럼 국가의 어른은 국민의 정신적 지주이며 국민이 곤궁할 때 의지하는 사람이다. 사회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성적 행동 못지 않게 화합, 사랑, 평화를 심어주는 감성적 접근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이는 종교지도자들이 적임인 역할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옳은 것은 옳다 말하고 아닌 것은 아니오라고 말해야 도덕적으로 잘못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 정의를 실천하고 책임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직업 어떤 직책의 사람도 그렇게 진위를 과감하게 말하려면 많은 숙고를 해야 한다. 말이 몰고올 파장 효과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신분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신적 지도자의 위치라면 말에 책임감을 갖고 신중을 기하는 것이 타당하다. 말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법정스님도 우리들은 말을 안해서 후회되는 일보다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많다고 말한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사제들의 대통령사퇴 촉구 발언이 일파만파다. ‘정의를 향한 의분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본질적으로 진리를 전파하는 사목자가 될 수 있다’고 책 ‘김수환 추기경 평전’이 말하는 것을 봐서는 사제집단이 사회정의에 민감한 것은 십분 이해 가능하다. 또한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해 정부가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는 것을 국민은 마뜩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 하더라도 대통령 사퇴는 다른 선 상에 있는 과유불급의 말이다. 부정하는 정도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서 분열을 완화시켜야 하는 직분의 사람들이 새 분열을 초래한다면 이는 비난이 마땅하다. 그러나 국민의 질타에 편승해 정부도 그들을 공격하는 것에만 몰입해서는 안 된다. 사제단의 극단적 요구의 원인을 정부가 모르는 바 아닐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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