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돈호

강릉문화원장

웰빙, 힐링이 생활의 요체가 되면서 먹을거리에도 ‘전통’이라는 이름이 경쟁력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전통과 문화를 앞세우며 세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명품 먹을거리 마을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바야흐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되, 차별화 된 고집과 명품화 노력이 더해지면, 단 한가지 테마만으로도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세상이다.

강릉시 사천면 노동중리는 그런 점에서 우리 고장의 대표선수로 꼽힐 만하다. 마을 입구에는 ‘갈골 과줄마을’이라는 커다란 자연석 안내문이 자랑처럼 서 있다. 60여 가구가 집집마다 OO한과, △△한과, ××한과 등등의 간판을 달고 전통한과인 ‘과줄’을 생산하고, 귀향하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으며, 명절 때는 밀려드는 주문에 쉴 틈이 없으니 과줄은 마을 주민들의 삶 자체고, 큰 자부심이다.

사실 과줄마을이 있는 ‘사천면’은 강릉 가는 길 30리, 주문진 가는 길 20리의 전형적인 농촌이다. 그런데도 6·25전쟁 후 온나라가 극도로 피폐해진 상황속에서도 대학생들이 줄지어 배출되는 등 당시 보기 드문 농촌 모습이 연출된 것도 따지고 보면 ‘과줄’이라는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번기에 땀흘려 생산한 농산물을 원료로 농한기(추석∼이듬해 정월대보름)에 놀지않고 과줄을 만들어 학비를 마련하는 전통이 이어져 온 것이다.

과줄 가공기술은 1979년 당시 39세였던 최봉석(현 도 무형문화재 제23호 강릉 갈골과줄 보유자)씨가 ‘강릉 갈골산자’로 본격적인 상품화 생산을 시작하고 이후 1989년 당시 농수산부 전통식품 강원도 1호로 지정되면서 유명세를 더했다.

1992년 전통식품 대한민국 제2호로 지정된 뒤 마을에 세워진 표석에는 전통 계승 노력이 생생히 담겨 있다. “옛 우리 마을은 농토의 황폐로 굶주리던 가난한 마을이었다. 1920년, 19세에 우리 마을에 출가하신 이원섭 여사(최봉석 씨의 작은댁 할머니)께서 쌀을 소재로 한 가공식품 과줄을 전수받아 마을 부녀자들에게 보급하여 70년 전통을 이어오는 동안 잘 사는 마을로 전환됐으며, 1989년 농수산부에서 과줄 시범마을로 지정되는 영광을 얻었다(갈골과줄회원 일동)”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할머니 잔심부름을 하면서 ‘가업’의 기초를 익힌 최봉석 씨는 나아가 옛기록과 자료를 찾아보고 보완·연구하면서 원료의 성질을 파악, 그 배합에 따라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알아내고 오직 손으로 만드는 전통맛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1996년에는 ‘강릉갈골산자 영농조합법인’으로 사업을 확장, 미국 시장에까지 직접 찾아가 전통 한과의 빼어난 맛을 알리게 됐다. 마을에는 갈골한과 체험전시관도 개관했다.

지난 2000년 농수산부 지정 전통식품 명인 23호(한과분야 최초)에 이어 올해 4월 도 무형문화재 제23호 강릉갈골과줄 보유자로 지정된 최봉석 씨의 이력과 족적은 갈골마을이 전국적 한과 명품마을로 인식되는 촉매제였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분야든 ‘명인’, ‘명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특히 까다롭기 그지없는 현대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전국 곳곳의 한과가 경쟁하는 상황속에서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있는 사천 갈골과줄의 무게는 소비자들에게 무한 신뢰와 구매 동기를 유발하게 된다. 강릉문화원은 과줄마을의 명성이 앞으로 100년, 200년 생명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명인’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 아래 무형문화재 선정 노력에 나선 결과 올해 결실을 보게 됐다.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존재와 지속적 홍보, 전통 수(手)작업을 고수하는 모든 주민의 열정과 화합이 더해져 오늘의 명품 과줄마을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갈골 과줄은 이제 마을의 공유 브랜드요, 자산이다. 누구 한사람이 독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앞으로 과줄마을에서 전통의 맥을 살리는 제2, 제3의 명인이 지속적으로 배출돼야 갈골 과줄도 스테디셀러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갈골 과줄처럼 농산물에 전통을 접목해 소득과 고용 등 각종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은 국가와 자치단체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강원도와 강릉에서 ‘전통’으로 먹고사는 마을과 명인·문화재 보유자들이 더 많이 등장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농어촌의 삶의 질을 높이는 ‘창조 경제’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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