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들은 12월을 침묵하는 달이라 명명한다. 이때 언급되는 침묵은 구시화문 (口是禍門) 즉 입이 재앙의 문이기 때문에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의 침묵이 아니고 자기사유(思惟)가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침묵이다. 당연히 12월은 묵상을 통해서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대로 살았는지 그보다는 세속적으로 살았는지 자신을 직시하고 성찰해 봄이 필요한 달이다. 불가에서는 참선을 하는 방 앞에 ‘묵언’을 써 붙인다. 선은 순수한 집중인 동시에 자기인내 내지는 응시인데 그 경지에 도달하려면 침묵이 제격이라고 법정스님은 말한다. 이때 강조되는 침묵이 바로 침묵의 달에서와 같은 의미의 침묵으로 오롯이 나를 돌아보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방법을 말한다.

‘가시나무 새’ 노랫말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은데 그렇게 많은 나 중에 ‘반듯한 나’ ‘남한테 이로운 나’ 등등의 ‘바람직한 나’로 살았다면 괜찮았을텐데 뭔가 부족했다는 자성이 물처럼 밀려오는 한 해 끝자락이다. 자신을 다스리는 것의 어려움에 대하여 노자는 ‘타인을 지배하는 자는 강력하지만, 자신을 지배하는 자가 더 강하다’고 말한다. 우리네 삶에는 해서 후회되는 일도 많고 안 해서 후회되는 일도 많다. 타이밍을 놓쳐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소심하고 표현력이 부족해서 진실을 전달 못하기도 했다. 아마도 ‘사과를 놓친 것’이 그 중 하나일지 모른다.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한국인들은 문화차이 때문에 낭패를 당한다. 한국인들은 사고의 잘잘못이 가려지기 전에 죄송한 마음으로 ‘I am sorry’를 먼저 말하는데 미국인들은 이 말을 ‘사고 책임이 나에게 있다’라는 말로 해석해 잘못을 고스란히 떠맡긴다는 것이다. 서양사회에서 사과는 사과의 내용을 인정하고 책임진다는 지극히 이성적인 무거운 말임에 비해 우리사회에서의 사과는 용서를 빌거나 화해를 청하는 치유와 감성의 언어다. 사과를 자주해도 괜찮은 이유다. 이해가 가기 전에 풀고갈 사람이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자. 실력있고 담대한 사람만이 사과를 먼저 청한다. 단언컨대 사과는 내 영혼을 윤택하게 살찌우는 일이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