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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

동은 2013년 12월 31일 화요일
   
▲ 동은 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며칠 전, 솜털 같은 함박눈이 퍼얼펄 내리는 산사에서, 템플스테이 오신 분들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얘기를 나누던 중 한 분이 “스님, 저 시계 판에 있는 글자가 뭐예요?” 하고 물었다. 내 거실 책장에는 시계가 하나 있는데 숫자 대신 한자게송이 적혀있다. 작년 도반스님 절에 갔다가 행사 기념품으로 제작한 시계를 선물 받았다. 그런데 시계 판에 온통 붉은 글씨로 다라니가 새겨져 있어 한 눈에 시간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한쪽 구석에 두었는데 얼마 전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시계 판을 뜯어내고 한지를 둥글게 오려 끼워 숫자 대신 글자를 써 넣은 것이다. ‘원각도량하처 현금생사즉시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라. 글자 수도 열두 자 인데다가 내용이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라 딱 어울리는 게송이었다.

이 글은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의 법보전에 있는 주련이다. ‘원만한 깨달음 즉,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현재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바로 이 자리가 그곳이다.’ 라고 답을 하고 있다. 한 생각만 돌이키면 네가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행복한 자리이니 따로 찾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법하신 팔만대장경을 모셔둔 곳에 오직 이 두 줄의 게송만이 걸려 있으니, 부처님의 평생 가르친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법보전 마당에서 이 게송을 접할 때면, 마치 눈앞에 부처님이 나타나는 듯한 모습이 연상이 된다. 그리고 고해에 지쳐 찾아와 쓰러진 중생들에게 어깨를 다독이며, ‘선남자여, 힘을 내시게!’ 하고 따뜻한 격려를 해 주시는 듯한 모습이 연상되어 항상 가슴 뭉클함을 느낀다.

그렇다. 우리가 숨 쉬고 사는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이 자리를 떠난 다른데서 무엇을 구하며 누릴 수 있겠는가?

우리네 중생들은 늘 무엇인가를 충족시키기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건강해야 되고, 부자가 되어야 하며, 출세하고 명예도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기를 쓰고 살아야만 된다. ‘이 고비만 지나면 곧 행복한 날이 올 거야’라는 희망을 가지고 내일, 내년 하면서 지금 이 순간까지 살아왔다. 그렇게 늘 다음의 행복을 기다리면서 사는 삶에 과연 행복이 올 수 있을까? 세상에 ‘나중 행복’이란 없다. 지금 행복해야 나중에도 행복하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만들어 가야 한다. 사실 행복은 늘 주변과 일상에 가득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 존재조차 모르고 지낸다. 지나가는 사람도 이름을 불러야 돌아보듯이, 허공 중에 가득한 행복도 불러들여 내 것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행복이 되는 것이다.

이제 올 한해도 저물어 간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늘 미련과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쉬운 그 마음은 지금의 마음일 뿐이다. 오직 행복하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연속이 결국 지금의 내 모습인 것이다. 미룰 것 없다. 지금 이곳에서 행복하면 된다. 그리하면 내 삶은 온 생애가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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