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호

대전대 교수·지방자치학회 명예회장
새누리당은 지난 연말부터 광역시의 자치구·군의회를 폐지하고 도의회의 기능을 시·군의회가 대신하도록 하여 기초·광역의회를 합병하고, 단체장 연임제한을 현행 3선에서 2선으로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지방자치제도 개편안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광역시의 자치구·군의회의 폐지는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둔다’는 헌법 제118조 제1항에 따라 광역시 자치구·군제의 폐지를 의미한다. 자치구·군의회 폐지론자들은 자치구·군의회의 폐지로 인한 대도시행정의 민주주의 약화문제를 구청장 직선제로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광역시의 하급행정기관으로 전락한 행정구의 구청장 직선은 지방자치의 본질적 요소인 자치권의 상실을 보완할 수 있는 적절한 대책이 못된다. 더구나 자치권을 갖지 못한 선출직 구청장의 모호한 위상과 역할은 대도시 행정의 혼란과 갈등을 가중시킬 것이다.

자치구·군 폐지론자들은 단층 자치제의 부작용을 경험해온 국내 시·군 합병 및 폐지 사례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특히 제주도 시·군 자치 폐지의 교훈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제주도는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로 출범하면서 4개 시·군 자치제를 폐지하고 2개 행정시로 전환했다. 이후 지역불균형 심화, 과거 서귀포시·남제주군·북제주군의 발전활력 저하, 주민참여 제약, 민관갈등 증폭 등으로 주민의 불만이 비등했다. 2011년 6월 도지사선거에서 후보들은 시·군 자치의 부활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기초자치가 없어 주민참여가 어려워지고 도정불신이 증폭되었다’며 기초자치 부활을 공약한 현 우근민 지사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제주도 자치제도 개편안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2년 넘게 활동한 끝에 시·군 합병과 자치구 폐지를 추진해온 정치권의 의도에 반하는 시·군 자치 부활이 법제화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행정시의 권한을 다소 강화하면서 행정시장을 주민이 선출하는 안을 채택해 건의했다.

새누리당이 고려하고 있는 기초·광역의회 합병방안, 즉 도의회선거를 폐지하고 도의회 기능을 시·군의회가 대신하는 방안은 수십 년 동안 지방자치를 연구해온 필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기상천외한 발상은 2005년 여·야 대표들이 여의도 모 식당에 모여 합의했던 반민주적 지방자치체제 개편안을 상기시킨다. 당시 여·야 대표들은 정기국회에서 전국의 시·군을 합병해 60∼ 70개의 광역시로 개편하고 도자치제를 폐지하는 대신 중앙정부가 임명하는 청장이 지휘하는 7∼ 8개의 광역지방행정청으로 개편하기로 합의했다. 이 개편안은 전문가들과 시민단체의 저항에 부딪혀 실현되지 않았으나 잠복 상태로 있다가 시·군 합병과 자치구 폐지 등의 양상으로 불거져왔다.

아울러 대다수 전문가들은 단체장의 연임제한을 3선에서 2선으로 감축시키는 것을 지방자치제도 개선방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지방자치제도의 선진화의 관건이 지방의 창의성과 잠재력 발휘를 속박하는 ‘소용돌이 정치체제’를 분권·참여체제로 전환하는 획기적 지방분권개혁을 단행하는 것이라고 본다.

진정성 있는 지방분권개혁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다수의 국민과 전문가들이 원하는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대선공약을 철회하는 것도 모자라 수세적 자세에서 돌변하여 헌정질서의 근간인 지방자치제도를 뿌리째 뒤흔들 광역시 자치구·군의 폐지, 기초·광역의회의 합병을 통한 도의회 무력화, 단체장의 연임제한 감축 등으로 중앙집권화 역공을 펴는 것은 결코 선진 통일한국시대를 열어야 할 공당(公黨)의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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