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家事)에는 변방인 사람들, 아내의 지시가 없으면 감히 해 볼 용기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결정하고 실천한다. 처음에는 낯설기 그지없고 자신감도 없었지만 그네들만의 방법과 노력으로 결과를 일궈낸다. ‘나도 해낼 수 있구나’가 이들을 고무시킨다. 바로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엄마 없이 홀로 육아를 담당하는 방송 속 아빠들 이야기이다. 이 프로들의 백미는 아이들보다 자신이 크게 변화하고 성장했다는 출연아빠들의 고백이다. 좋은 아빠 되고 싶은 욕심이 있는 아빠들에게 교육적 효과가 만점인 셈이다. 이런 류의 방송은 남성들에게 ‘아빠역할’에 대한 숙고를 제공한다. 어르신 아버지들에게는 나도 자식과 저렇게 친해질 것을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해 주고 주인공들 세대에게는 따라해야 할 역할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사회환경은 사회구성원의 변화를 유도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을 환경의 산물이라고도 말한다. ‘여성’의 약진이 날로 성장하는 만큼 남편 즉 아빠역할이 단순한 버팀목의 의미를 넘어서 가정사의 실제적인 파트너로 확장되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인류학자 헬렌피셔는 ‘우리 모두는 여성적인 특성과 남성적인 특성의 복잡한 혼합이다’라고 말한다. 남편 아내 역할 구분이 더 이상 의미 없는 세태이니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배우자 역할 능력을 끄집어 내어 실천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추세인데 가사분담률은 별로 진전 없는 현실이다. 작년 한 언론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 맞벌이 부부의 가사 공평분담률은 21.9%에 불과했다. 엊그제 영국에서는 일하는 엄마가 혼자 쉬는 시간은 하루 17분에 불과하고 가사의 78%는 여성이 담당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은 수치다. 최근 부부의 38.4%가 하루 30분도 대화하지 않는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아내들은 대화 할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없다. 신세대 남편들이 좋은 가장이 되려면 연신 부엌을 살피고 아이들과 긴시간 함께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빠들의 육아가 방송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붐을 조성하기 바란다. 맞벌이 엄마들은 너무 고단하기 때문이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