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한조가 되어 경기를 치르는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한 사람이 불법출발 또는 실수로 퇴장을 하게 되면 혼자 뛰는 나머지 선수의 기량 역시 떨어진다. 물리적 맞수일지언정 맞수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상이한 결과를 만들어냄을 보여준다. 절박함의 유무가 결과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의 맞수는 ‘재주나 힘 등이 엇비슷하여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태’다.

솔직히 맞수는 스포츠 세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경쟁이 치열한 세계일수록 맞수도 치열하게 존재한다. 지나치게 맞수를 의식해서 내가 못하는 것은 너도 안 된다는 식의 동반침몰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맞수는 긍정적 의미로 해석되고 활용되는 것이 마땅하다. 나를 늘 점검해 보려는 노력, 부족한 부분을 채울 전략적 대응,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 등은 맞수의 존재가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에서도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열대어를 운반할 때 열대어와 그 열대어를 사냥하는 실뱀장어 몇마리를 함께 수족관에 넣어 준다. 열대어가 자신을 추격하는 실뱀장어 존재를 의식하면서 방어를 위해 바삐 움직여야 싱싱함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고전 서경에는 ‘군자는 무일(無逸)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무일의 원뜻은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지만 신영복은 저서 ‘강의’에서 ‘무일의 본질은 불편함이고 이 불편함이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안주하지 않는 긴장감이 발전의 모태가 된다는 말이니 늘 불편함을 조성하는 ‘맞수’는 자신의 향상을 돕는 훌륭한 자극제인 셈이다.

스포츠는 경쟁이고 경쟁의 백미는 승리이니 당연히 승자에게 박수가 집중된다. 그러나 노메달이어도 칭송받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올림픽출전 6번이라는 신기록을 세운 스피드스케이팅 이규혁 선수 이야기다. 불굴의 의지를 보여 준 이규혁 선수도, 그의 노고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는 우리국민도 성숙함의 완결판이다. 어쩌면 이규혁 선수의 평생 맞수는 상대 선수가 아니라 자기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선수가 받은 박수는 긴 세월 긴장하고 깨어 있음에 대한 갈채인 까닭이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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