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신재

한림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한국전통문화예술원은 지난 3월 18일부터 22일까지 미국 뉴욕의 타임스스퀘어를 비롯한 명소들에서 ‘아리랑, 미국의 심장을 두드리다’를 공연하였다. 우리나라의 각종 아리랑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정선아리랑(아라리)도 이에 포함되었다. 마지막 무대에서는 공연장의 모든 사람들이 본조아리랑을 함께 불렀다고 한다.

이에 앞서 2월 24일 러시아 소치의 겨울올림픽 폐막식에서도 한국의 가수들이 아리랑을 불렀다. 조수미가 경기도 긴아리랑을, 나윤선이 강원도 자진아리랑을, 이승철이 본조아리랑을 각각 불렀다. 이 공연에서 아라리는 채택되지 않았다.

외국에서 행해진 두 공연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본조아리랑으로 대미를 장식한 것은 한국의 각종 아리랑들 중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아리랑은 본조아리랑이기 때문이다. 본조아리랑은 배우기 쉽고, 부르기 쉽고, 감정적 호소력이 강해서 전파력도 강하다. 대부분의 강원도 사람들도 아라리를 즐겨 부르지 않고 본조아리랑을 즐겨 부른다.

2012년에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을 때 강원도에서는 한국의 모든 아리랑의 근원은 강원도의 아라리라는 것을 애써 강조하였다. 이것은 그렇게 애써 강조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이것은 학계에서 이미 오래 전에 정설로 굳어져 있는 학설이기 때문이다. 아라리의 가치는 아라리가 한국의 모든 아리랑소리들의 근원이라는 사실에서보다는 아라리 고유의 맛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소리에도 맛이 있다. 판소리에 판소리 고유의 맛이 있듯이 아라리에 아라리 고유의 맛이 있다. 각종 젓갈들에 각각 고유의 맛이 있듯이 각종 아리랑들에 각각 고유의 맛이 있다. 명란젓과 어리굴젓의 맛이 다르듯이 아라리와 본조아리랑은 맛이 다르다. 강원도 민요는 소박하고 경기도 민요, 전라도 민요는 세련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니다. 우리는 강원도 밖의 사람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전남대 이용식 교수는 한 논문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강원도 아라리는 매우 뛰어난 음악적 특징을 갖는 것으로서 아리랑소리의 백미로 꼽히는 것이다. …… 가창자의 요성(搖聲)은 전라도 민요보다도 훨씬 세련된 모습을 보인다.”

소치 겨울올림픽 폐막식 행사에서 본조아리랑 등을 내세우고 아라리를 채택하지 않은 것은 웅장해야 하는 폐막식 분위기에 아라리는 걸맞지 않는다고 연출자가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걸맞지 않은 것은 다른 아리랑들도 마찬가지이다. 전체 폐막식 행사 중 한국에 할애된 시간은 8분이었는데 이 8분간의 공연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아쉬웠다’ ‘초라했다’ ‘역부족이었다’ 등이었다.



세상에는 첫 만남에서 호감을 갖게 되는 사람이 있고, 오래 두고 사귀면서 깊은 맛을 느끼게 되는 사람이 있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음악은 처음 들을 때에도 가슴에 울림이 온다. 그러나 브람스의 음악은 처음 들을 때에는 그 맛을 제대로 느끼기가 쉽지 않다. 브람스의 음악은 반복해서 들어야 그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아라리는 후자이다.

사람들이 아라리와 친숙하지 않은 것은 아라리의 그 깊은 맛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 맛은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20여 년 동안 강원도 각지로 민속답사를 다니면서 아라리의 그 깊은 맛을 알게 되었다. 도내 방송국에서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아라리를 한 수씩 방송했으면 좋겠다. 도내 신문에서는 정기적으로 아라리의 노랫말 한 수씩을 소개하고 해설했으면 좋겠다. 매년 아라리경연대회(아라리만을 위한 경연대회)를 열었으면 좋겠다. 우선 강원도 사람들이 아라리의 맛을 즐겼으면 좋겠다. 아라리의 세계화는 그 다음의 일이다. 중국의 텔레비전에서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경극(京劇)을 내보낸다. 판소리는 그 명칭대로 소리의 예술인데 오늘날의 판소리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명창들이 그 갖가지 소리를 다듬느라고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렸던가!

▶약력

△한림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강원도 문화재위원 △서울대 국어교육과. 성균관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저서 ‘강원의 전설’, ‘죽음 속의 삶-재중강원인 구술생애사’, ‘원본 김유정전집’등 △논문 ‘춘향가와 죽음의 미학’, ‘가면극 할미마당과 죽음의 미학’, ‘아라리의 자연관’, ‘자장전설과 탑의 상징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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