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할 ‘참(慘)’에 슬프다의 ‘척(慽)’이 합해진 ‘참척(慘慽)’은 아픈 정도가 처절하고 참담했을 때의 슬픔을 묘사한다. 고 박완서씨가 아들 잃은 후 자신의 심경을 이 단어로 묘사했으니 참척은 인간으로서 견딜 수 있는 고통의 극한을 표현한다. 온 국민의 심적고통을 참척으로 말하면 과할까? 그저 먹먹하고 아프다. ‘눈뜨고 아이 도둑 맞는 나라’라는 신문 제목만 봐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제발 구해주세요’라는 아빠 엄마의 절규를 봐도 가슴이 미어진다. ‘도망친 세월호 선장은 선박운항관리의 전통을 더럽혔다’라는 뉴욕타임즈의 글도 굴욕스러워 아프다. 그러나 우리 어른들은 아퍼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성수대교 붕괴 천안함 사고 등 세계인이 놀라는 인재(人災) 빈번한 나라의 어른들이기에 하는 말이다.

투자은행 ‘키프, 브뤼엣&우즈’는 세계무역센터 남쪽건물 88층과 89층을 쓰고 있었는데 9·11 사태시 직원 67명을 잃었다. 근데 그 67명 중 66명이 89층 직원이었다. 폭발음이 들리자 건물내 방송에서는 움직이면 위험하니 소요하지 말고 자기자리를 지킬 것을 주문했다. 이 방송에도 불구하고 탈출가능한 시간 내에 88층 직원들은 선동이 된 누군가를 따라 계단으로 뛰어간 덕에 구조되었다. 반면 89층 사람들은 방송이 시키는 대로 사무실에 남아 있다 변을 당했다. 책 히든브레인에 나오는 이야기로 이 현상을 책은 우리의 잠재의식으로 설명한다. 즉 재난이 한 집단에게 닥칠 경우 개인의 결정보다는 집단행동자체가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어 재난상황에서 갇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주위사람들과 의견을 일치시켜 리더를 따르는 행동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대형사고시 지휘관에 따라 피해 규모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도망친 세월호 선장에 대해 온 국민이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가만있지 말고 탈출하라’는 한마디 말만 했었더라도 인명피해를 줄였을텐데... 선장은 중죄받아 마땅하다. 가시적인 발전에만 급급해 인간답기교육을 소홀히 했던 사회시스템이 큰 도전을 받고 있다. 이렇게 큰 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변화하지 못하면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나라다.

조미현 출판기획부국장 mi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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